양주 조씨
楊州 趙氏
1명
확인 독립유공자
0명
수록 친일 기록
3만
2015 인구
208위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조잠趙岑
고려 때 양주호장(楊州戶長)을 역임하고 뒤에 판중추부사에 추증된 인물이다.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받들고 양주를 본관으로 삼았다. 증손 대에 조계생과 조말생 형제가 나란히 문과에 급제하면서 가문이 크게 일어났다.
양주 조씨는 고려 때 양주호장을 지내고 판중추부사에 추증된 조잠을 시조로 한다. 향리 집안에서 출발하였으나 조잠의 증손인 조계생과 조말생이 나란히 문과에 급제하고 조선 세종 때 각각 좌참찬과 영중추원사에 오르면서 중앙 관인 가문으로 발돋움하였다. 본관 양주(楊州)는 오늘날 경기도 양주시 일대이다. 조계생의 시호는 정평이며, 이 두 형제의 후손이 조선 후기 명문의 뼈대를 이루었다.
가문의 역사
양주 조씨는 조선 시대에 문과 급제자 90명을 배출하여 인구 대비 급제자 비율이 매우 높은 가문으로 꼽힌다. 정승 8명과 홍문관 대제학 3명을 냈으며, 경종 연간에는 노론 4대신의 한 사람인 조태채가, 고종 초에는 영의정을 지낸 조두순이 정국의 중심에 섰다. 집성촌은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묵안리와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청하면 관상리 등에 형성되어 있다. 근현대에는 한진그룹 회장 조중훈과 메리츠금융지주 회장 조정호 등 실업계 인물도 나왔다. 2015년 인구는 29,631명이다.
독립유공자 1명 확인
서훈자 명단 본관 확인 1명
국가보훈부 독립유공자 명단 중 본관이 공개 자료(한국역대인명정보, 위키백과)에서 확인되고 생몰년이 일치하는 인물입니다. 본관 기록이 없는 서훈자가 훨씬 많으므로 실제 이 가문의 독립유공자는 이보다 많을 수 있습니다.
| 이름 | 생몰년 | 본적 | 운동계열 | 훈격 | 본관 근거 | 공적조서 |
|---|---|---|---|---|---|---|
| 조병세趙秉世 | 1827–1905 | 경기도 가평 | 계몽운동 | 건국훈장 대한민국장(1962) | 역대인명정보 | 공훈록 ↗ |
친일 행적 기록 0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공개 자료에서 본관이 확인된 친일 행적 기록이 수록되지 않았습니다.
가문의 주요 인물
조말생
1370년에 태어나 1447년에 죽은 문신이다. 1401년(태종 1) 증광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1446년 영중추원사에 이르렀으며 시호는 문강이다.
조계생
1363년에 태어나 1438년에 죽은 문신이다. 조말생과 함께 문과에 급제하여 좌참찬에 올랐으며 시호는 정평이다.
조태채
1660년에 태어나 1722년에 죽은 문신으로 노론 4대신의 한 사람으로 꼽힌다.
조두순
1796년에 태어나 1870년에 죽은 문신이다. 1827년 문과에 급제하였고 1866년(고종 3) 영의정으로 치사하였다.
조중훈
1920년에 태어나 2002년에 죽은 실업가로 한진그룹 회장을 지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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