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조씨
平壤 趙氏
2명
확인 독립유공자
0명
수록 친일 기록
5만
2015 인구
150위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조춘趙椿
금자광록대부 추밀원부사를 지낸 인물로, 남송에 건너가 금나라를 정벌하는 데 큰 공을 세워 송나라의 상장군이 되었다고 전한다.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받들었다.
이 가문의 본관은 본래 상원(祥原)이었으나 뒤에 평양으로 고쳐졌다. 고려 후기의 권신 조인규가 딸을 왕비로 들여보내 국구(國舅)의 지위에 오르면서 본관을 평양으로 바꾸었다고 전한다. 조인규가 문하시중에 오르며 가문의 기틀을 세웠고, 그 후손에서 조선 개국공신 조준이 나와 조선 초기 최고 명문의 하나로 자리 잡았다. 평양은 예로부터 서경으로 불린 서북 지역의 중심지로, 실제 세거지는 충청도와 경기도 일원에 형성되었다.
가문의 역사
조선시대에 문과 급제자 28명을 배출하였고, 그 밖에 무과와 생원시·진사시는 물론 역과·율과·음양과·의과 등 잡과에서도 합격자를 냈다. 조인규는 1252년 음서로 몽골어 통역관에 뽑혀 관직에 나아간 뒤 문하시중까지 올랐다. 조준은 전제 개혁안을 마련해 조선의 경제적 기초를 세운 인물로 1392년 개국 1등공신에 책록되고 1403년 영의정부사에 올랐으며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조선 후기에는 매화 그림으로 이름을 떨친 화가 조희룡이 나왔다. 집성촌은 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과 논산시 성동면, 태안군을 비롯해 경기도 김포시·양주시·양평군·화성시, 충청북도 진천군 등지에 형성되어 있다. 2015년 인구는 50,480명이다.
독립유공자 2명 확인
친일 행적 기록 0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공개 자료에서 본관이 확인된 친일 행적 기록이 수록되지 않았습니다.
가문의 주요 인물
조인규
1252년 음서로 몽골어 통역관에 뽑혀 관직에 나아간 뒤 문하시중까지 오른 고려 후기의 대신으로, 딸을 왕비로 들여보내 가문의 지위를 크게 높였다.
조준
호는 송당이며 전제 개혁안을 마련해 조선의 경제적 기초를 세운 개국 1등공신으로, 1403년 영의정부사에 올랐고 시호는 문충이다.
조희룡
호는 우봉이며 시와 서예, 그림에 두루 능해 추사체를 잘 쓰고 난초와 매화를 즐겨 그린 화가로, 매화서옥도를 남기고 호산외사를 저술하였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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