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천 조씨
林川 趙氏
0명
확인 독립유공자
0명
수록 친일 기록
1.4만
2015 인구
305위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조천혁趙天赫
본명은 조수강(趙守康)이며 북송 태조의 손자인 조유길의 다섯째 아들로 전한다. 송나라에서 진사시에 합격해 서두공봉관을 지내다가 979년 왕실의 변란을 피해 숙부와 함께 고려로 건너와 임천에 정착하였다고 한다. 고려 현종 때 강감찬과 함께 거란군을 토벌한 공으로 문하시중평장사에 올라 가림백에 봉해졌다고 전한다.
시조 조천혁이 거란 토벌의 공으로 가림백에 봉해지고 임천에 자리를 잡으면서 후손들이 임천을 관향으로 삼았다. 임천은 백마강 남쪽에 자리한 고을로 현재의 충청남도 부여군 임천면 일대에 해당한다. 시조가 송나라에서 건너온 인물로 전해지는 까닭에 이 가문은 중국에서 동래한 계통의 조씨로 분류된다. 시조의 본명이 조수강이고 고려에 들어와 조천혁으로 고쳤다는 전승이 족보에 함께 실려 있다.
가문의 역사
조선시대에 문과 급제자 42명을 배출하였다. 11세손 조지서는 1474년 생원시에 장원하고 같은 해 식년문과에 급제해 세자시강원필선과 보덕으로 세자 시절의 연산군을 가르쳤는데, 엄격한 진강을 꺼린 연산군에게 미움을 사 1504년 갑자사화 때 참살되었고 1506년 중종이 즉위한 뒤 관작이 회복되며 승정원도승지에 추증되었다. 조정만은 1681년 진사시에 합격하여 판서에 올랐고, 조명리는 1731년 문과에 급제해 대사헌 등을 지냈으며 시호는 문헌이다. 집성촌은 대전광역시 서구와 충청남도 홍성군·논산시·부여군·예산군 일대에 형성되어 있다. 2015년 인구는 14,271명이다.
독립유공자 0명 확인
이 가문에서 아직 확인된 독립유공자 정보가 없어요. 수록 기준은 국가보훈부 서훈자 중 본관이 공개 자료로 확인되는 인물입니다. 서훈자 명단에 있어도 본관 기록이 공개 자료에 없으면 목록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친일 행적 기록 0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공개 자료에서 본관이 확인된 친일 행적 기록이 수록되지 않았습니다.
가문의 주요 인물
조지서
1454년에 태어나 1474년 생원시에 1등으로 합격하고 같은 해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문신이다. 자는 백부, 호는 지족정 또는 충헌이며 지평과 창원부사를 거쳐 세자시강원필선·보덕을 지냈고 경연의 시독관과 시강관을 늘 겸대하였다. 성종 때 청백리에 녹선되었으나 1504년 갑자사화에 연루되어 참살되었다.
조정만
1656년에 태어나 1739년에 세상을 떠난 문신으로 1681년 진사시에 합격하고 판서를 지냈다.
조명리
1697년에 태어나 1756년에 세상을 떠난 문신으로 1731년 문과에 을과로 급제해 대사헌 등을 역임하였다. 시호는 문헌이다.
참고 자료
같은 조씨의 다른 가문
다른 가문 찾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