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녕 조씨
昌寧 曺氏
6명
확인 독립유공자
2명
수록 친일 기록
39.1만
2015 인구
24위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조계룡曺繼龍
신라 진평왕 대의 인물로, 창녕 화왕산 자매못 설화에 따라 겨드랑이에 '조(曺)' 자가 붉게 새겨져 있어 왕이 조씨 성을 내렸다고 전한다. 진평왕의 사위가 되어 창성부원군에 봉해졌다고 족보는 기록한다.
시조 조계룡의 득성 설화는 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 옥천리 화왕산 자매못을 배경으로 전해지며, 이 때문에 창녕을 본관으로 삼는다. 조선 중기 이후 문헌으로 계보가 뚜렷해지는 중시조는 신라 아간시중 조흠의 아들 조겸(曺謙)이다. 우리나라 조(曺)씨는 사실상 창녕 조씨 단일본으로, 다른 조씨 본관들도 대부분 창녕에서 갈라져 나간 분적종이다.
가문의 역사
고려 말 조민수는 문하시중에 올라 창성부원군에 봉해졌으나 1388년 위화도 회군 뒤 이성계와 대립하다 유배되었다. 조선시대에는 문과 급제자 110여 명을 배출했고, 영의정 조석문, 『만분가』를 지은 조위, 그리고 퇴계 이황과 쌍벽을 이룬 성리학자 남명 조식이 대표적이다. 부제학공파·감사공파·시중공파 등 40개가 넘는 분파가 있으며 2015년 인구는 391,084명이다.
독립유공자 6명 확인
조만식曺晩植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조선의 간디'로 불린 민족지도자로 3·1운동에 참가해 투옥되었고, 1922년 조선물산장려회를 창설해 회장을 맡았으며 신간회 평양지회장을 지냈다. 광복 후 신탁통치 반대운동을 이끌다 북한에서 연금된 뒤 1950년 총살되었고, 1970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출처 확인 ↗조성환曺成煥
건국훈장 대통령장1907년 신민회 조직에 참여했고 1919년 대한독립선언 39인 대표의 한 사람으로 서명했다. 대한민국임시정부 군무차장과 군무부장을 지내고 1940년 한국광복군 창설에 참여했으며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받았다.
출처 확인 ↗조도선曺道先
건국훈장 독립장1909년 하얼빈에서 안중근과 '7인 동맹'을 맺고 이토 히로부미 처단 거사에 가담해 우덕순과 함께 채가구역에서 대기했다. 거사 후 연루자로 체포되어 1년 6개월 옥고를 치렀으며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출처 확인 ↗조규찬
건국훈장 애족장1931년 경성제국대학 재학 중 교내 비밀결사 독서회를 조직해 반제학생협의회로 확대하고 반제신문과 격문을 간행하다 1932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처벌받았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출처 확인 ↗서훈자 명단 본관 확인 5명
국가보훈부 독립유공자 명단 중 본관이 공개 자료(한국역대인명정보, 위키백과)에서 확인되고 생몰년이 일치하는 인물입니다. 본관 기록이 없는 서훈자가 훨씬 많으므로 실제 이 가문의 독립유공자는 이보다 많을 수 있습니다.
친일 행적 기록 2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조병상曺秉相
중추원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정부 1,006명) 등재
1936년부터 광복까지 조선총독부 중추원 주임참의를 지내며 동민회·국민총력조선연맹·조선임전보국단 등에서 활동하고 전쟁 지원을 역설하는 강연과 기고를 이어갔다. 광복 후 반민족행위처벌법으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고,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과 친일인명사전 중추원·친일단체 부문에 등재되었다.
출처 확인 ↗조재천曺在千
관료친일인명사전(민족문제연구소) 등재
일제강점기에 사법시험에 합격해 조선총독부 판사로 근무한 이력으로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되었다. 광복 후에는 경상북도지사와 법무부·내무부 장관을 지냈다.
출처 확인 ↗가문의 주요 인물
조민수
고려 말 문하시중이자 창성부원군으로, 이성계와 함께 위화도 회군을 주도한 무장이다.
조석문
세조 대에 영의정을 지낸 문신으로 이시애의 난 진압에 공을 세웠다.
조식
호는 남명(南冥). 퇴계 이황과 함께 영남 성리학의 두 봉우리로 꼽히며 실천을 중시하는 학풍으로 수많은 의병장을 길러냈다.
조위
성리학자이자 문인으로 유배가사의 효시로 평가되는 「만분가(萬憤歌)」를 지었다.
조수미
세계 무대에서 활동하는 소프라노로, 한국을 대표하는 성악가다.
조훈현
제1회 응씨배 우승 등 세계 바둑을 제패한 기사로, 이후 국회의원을 지냈다.
참고 자료
같은 조씨의 다른 가문
다른 가문 찾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