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 조씨
玉川 趙氏
3명
확인 독립유공자
0명
수록 친일 기록
5.3만
2015 인구
144위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조장趙璋
고려 때 광록대부 검교대장군 문하시중을 지낸 인물로, 조준(趙俊) 또는 조준장(趙俊璋)이라고도 전한다.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받들어 옥천을 관향으로 이어왔다.
옥천(玉川)은 전라도 순창(淳昌)의 옛 이름으로, 지금의 전북특별자치도 남부에 자리한 순창군이다. 시조 조장이 고려에서 문하시중을 지낸 뒤 후손들이 옥천을 본관으로 삼았다. 고려 말에는 조전과 조원길이 잇달아 옥천부원군(玉川府院君)에 봉해지면서 가문이 자리를 굳혔고, 판도판서를 지낸 조홍규와 검교문하시중 조여 등도 이 무렵 인물이다. 후손은 요제공파·부정공파·광양공파·절제공파·판서공파·부사공파·조호공파 등 일곱 파로 나뉜다.
가문의 역사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 13명을 배출하였다. 고려 말 조원길은 정몽주·설장수 등과 함께 공양왕을 옹립한 공으로 1등공신에 올라 옥천부원군에 봉해졌으나, 1392년 고려가 망한 뒤 조선에서 벼슬하지 않고 절의를 지켜 고려 오은(五隱)의 한 사람인 농은(農隱)으로 불렸으며 시호는 충헌(忠獻)이다. 그 아들 조유는 전농시부정을 지내고 두문동 칠십이현에 이름을 올렸고, 손자 조숭문은 함경도 병마절도사를 지내고 병조판서에 추증되었는데 아들 조철산과 함께 절의를 지켜 시호 절민(節愍)을 받았다. 이후로도 1515년 문과에 급제해 정언·어사·교리·참의를 지낸 조침을 비롯해 면천군수 조사순, 태인현감 조종손, 노성현감 조순 등 관직에 오른 이들이 이어졌다. 집성촌은 전라남도 순천시·곡성군과 담양군 금성면·월산면 등 호남 일대에 분포한다. 2015년 인구는 53,406명이다.
독립유공자 3명 확인
서훈자 명단 본관 확인 3명
국가보훈부 독립유공자 명단 중 본관이 공개 자료(한국역대인명정보, 위키백과)에서 확인되고 생몰년이 일치하는 인물입니다. 본관 기록이 없는 서훈자가 훨씬 많으므로 실제 이 가문의 독립유공자는 이보다 많을 수 있습니다.
친일 행적 기록 0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공개 자료에서 본관이 확인된 친일 행적 기록이 수록되지 않았습니다.
가문의 주요 인물
조원길
정몽주 등과 함께 공양왕을 옹립한 공으로 1등공신에 올라 옥천부원군에 봉해졌으나, 고려가 망한 뒤 조선에서 벼슬하지 않아 고려 오은의 한 사람인 농은으로 불렸다. 시호는 충헌(忠獻)이다.
조유
전농시부정을 지내고 두문동 칠십이현에 이름을 올린 인물이다.
조숭문
함경도 병마절도사를 지내고 병조판서에 추증된 무신으로, 아들 조철산과 함께 절의를 지켰다. 시호는 절민(節愍)이다.
조침
1515년 문과에 급제해 정언·어사·교리·참의를 지낸 문신이다.
조연하
제5·8·12대 국회의원을 지낸 정치인이다.
참고 자료
같은 조씨의 다른 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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