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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인구 1913.4만명 · 2015 인구주택총조사

순창 조씨

淳昌 趙氏

0

확인 독립유공자

0

수록 친일 기록

3.4만

2015 인구

191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조자장趙子長

고려 초에 순창호장을 지냈다고 전하는 인물이다. 후손들이 그가 터를 잡은 순창을 관향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왔다. 향리 가문에서 출발해 고려 중기 이후 중앙 관계로 진출하였다.

시조 조자장이 고려 초 순창호장을 지낸 데서 비롯되어 후손들이 순창을 본관으로 삼았다. 본관 순창은 전북특별자치도 남부에 자리한 고을로, 본래 백제의 도실군이었다. 757년 신라 경덕왕 때 순화군으로 고쳐졌고 940년 고려 태조 때 순창으로 정해져 지금까지 이어진다. 후대에 진위파·안촌파·문등파·삼고파·행정파·지곡파·대종가파 등 여러 분파로 나뉘었다.

가문의 역사

5세손 조인평이 1177년 망이·망소이의 난을 진압한 공으로 일등공신에 책록되고 금오위낭장 대장군을 지내면서 가문이 일어섰다. 8세손 조렴은 1290년에 태어나 1343년에 죽었는데 1315년 과거에 급제해 좌사의대부와 밀직부사를 지냈고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조선시대에는 문과 급제자 17명을 배출하였으며, 조유성은 1555년 문과에 급제해 사헌부장령과 나주목사를 지냈고, 류성룡의 외손자인 조수익은 1633년 문과에 급제해 대사헌과 예조참판, 한성부좌윤을 역임하였다. 집성촌은 충청북도 괴산군과 경기도 평택시 서탄면 등에 형성되었으며, 괴산 칠충사가 문중 유적으로 전한다. 2015년 인구는 34,069명이다.

독립유공자 0명 확인

이 가문에서 아직 확인된 독립유공자 정보가 없어요. 수록 기준은 국가보훈부 서훈자 중 본관이 공개 자료로 확인되는 인물입니다. 서훈자 명단에 있어도 본관 기록이 공개 자료에 없으면 목록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친일 행적 기록 0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공개 자료에서 본관이 확인된 친일 행적 기록이 수록되지 않았습니다.

가문의 주요 인물

고려

조인평

시조의 5세손으로 1177년 망이·망소이의 난을 진압한 공으로 일등공신에 책록되고 금오위낭장 대장군을 지냈다.

고려

조렴

1290년에 태어나 1343년에 죽었다. 1315년 과거에 급제해 좌사의대부와 밀직부사를 지냈으며 시호는 문정이다.

조선

조유성

1555년 문과에 급제해 사헌부장령과 나주목사를 지낸 문신이다.

조선

조수익

류성룡의 외손자로 1633년 문과에 급제해 대사헌과 예조참판, 한성부좌윤을 역임하였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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