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산 김씨
善山 金氏
5명
확인 독립유공자
0명
수록 친일 기록
19.2만
2015 인구
47위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김선궁金宣弓
초명은 김선(金宣)으로, 고려 태조를 도와 삼중대광 문하시중에 이르고 대승(大丞)에 추증되었으며 선주백(善州伯)에 봉해지고 순충공(順忠公) 시호를 받았다.
선산 김씨는 계통이 둘이다. 하나는 고려 개국공신으로 선주백에 봉해진 김선궁을 시조로 하는 일선(一善) 김씨 계통이고, 다른 하나는 신라 경순왕의 여덟째 아들로 일선군에 봉해진 김추(金錘)를 시조로 하는 들성 김씨 계통이다. 두 계통은 조상이 다르지만 같은 고을에 세거하면서 동명동본(同名同本)이 되었다. 선산은 신라 눌지왕 때 일선군이었다가 1413년 선산군이 되었고, 1995년 구미시와 통합되어 현재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이다.
가문의 역사
김선궁 계는 백암파·농암파·간의공파·화의군파·낭장공파 등으로, 김추 계는 중서령공파·판서공파·좌의정공파·별장공파의 4대파와 진락당공파 등 6개 중파로 나뉜다. 조선 전기 성리학 학맥의 중심으로 김숙자가 학문을 세우고 그 아들 김종직이 영남 사림파의 종장으로 추앙되었으나 무오사화로 화를 입었다. 이 밖에 우의정·좌의정을 지낸 김응기, 동인의 영수 김효원 등을 배출하였고, 일선·선상 표기를 합한 2015년 인구는 약 19만 2천 명이다.
독립유공자 5명 확인
김정묵金正默
건국훈장 애국장1919년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경상도 의원으로 활동하고 1920년대 베이징을 무대로 의열단 등 항일운동을 전개하다 1944년 베이징에서 사망하였다. 1963년 대통령표창에 이어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출처 확인 ↗김교락金敎洛
건국훈장 애국장1882년생으로 1917년 정동근·양재홍 등과 함께 전라남도 일대에서 약 1년간 1천여 원의 군자금을 모집하다 체포되어 징역 12년을 선고받았다. 1977년 건국포장에 이어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출처 확인 ↗서훈자 명단 본관 확인 4명
국가보훈부 독립유공자 명단 중 본관이 공개 자료(한국역대인명정보, 위키백과)에서 확인되고 생몰년이 일치하는 인물입니다. 본관 기록이 없는 서훈자가 훨씬 많으므로 실제 이 가문의 독립유공자는 이보다 많을 수 있습니다.
친일 행적 기록 0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공개 자료에서 본관이 확인된 친일 행적 기록이 수록되지 않았습니다.
가문의 주요 인물
김숙자
길재의 학통을 이어 아들 김종직에게 전한 성리학자이다.
김종직
영남 사림파의 종장으로 「조의제문」이 무오사화의 빌미가 되었다.
김응기
중종 대 우의정과 좌의정을 역임한 문신이다.
김효원
선조 대 동서 분당 당시 동인의 중심 인물이었다.
김범부
동양철학자이자 사상가로, 소설가 김동리의 형이다.
김동리
「무녀도」·「등신불」 등을 쓴 한국 현대문학의 대표 소설가이다.
참고 자료
같은 김씨의 다른 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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