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풍 김씨
淸風 金氏
3명
확인 독립유공자
1명
수록 친일 기록
11.1만
2015 인구
89위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김대유金大猷
고려 말 문하시중을 지내고 청성부원군(淸城府院君)에 봉해진 인물로, 신라 경순왕의 넷째 아들 김은열의 6세손인 대장군 김순웅의 11세손으로 전해진다.
신라 김알지를 원시조로 하고 경순왕의 후손인 김대유(金大猷)를 시조로 삼는다. 김대유가 고려 말 문하시중에 올라 청성부원군에 봉해지고 청풍에 세거하면서 후손들이 청풍을 관향으로 삼았다. 본관 청풍(淸風)은 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 일대로, 757년 신라 경덕왕 때 지금의 이름으로 개칭된 고을이다.
가문의 역사
조선 중기 이후 서인·노론계의 핵심 명문으로 부상해 상신(정승) 8명, 대제학 3명, 종묘배향공신 4명, 왕비 2명을 배출했다. 대동법을 실시한 영의정 김육(金堉)과 그 아들 김좌명, 손자 김석주로 이어지는 3대와, 김재로·김치인 부자 영상(領相)이 특히 유명하다. 현종비 명성왕후와 정조비 효의왕후를 배출해 두 차례 국구(國舅) 가문이 되었으며, 기묘사화 때 조광조와 함께 화를 입은 김식(金湜)도 이 가문이다. 2015년 기준 인구는 110,815명이다.
독립유공자 3명 확인
김규식金奎植
건국훈장 대한민국장1919년 파리강화회의에 신한청년당 대표로 파견되어 독립을 청원했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외무총장·학무총장과 부주석을 역임하며 외교 독립운동을 이끌었다. 1989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출처 확인 ↗김규흥金奎興
건국훈장 애국장충북 옥천 출신으로 1906년 대한자강회에서 활동했고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중국 신해혁명에 참여했으며, 1921년 박용만과 함께 흥화실업은행을 세워 독립운동 자금을 조달했다. 1998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출처 확인 ↗김성일金聖日
대통령표창1919년 3·1운동에 참가한 뒤 황해도 해주에서 문응순 등과 거사를 논의하고 한글 독립선언서를 직접 지어 5천 장을 인쇄, 태극기를 제작해 4월 1일 3천여 명이 참여한 만세시위를 이끌었다. 2010년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다.
출처 확인 ↗서훈자 명단 본관 확인 1명
국가보훈부 독립유공자 명단 중 본관이 공개 자료(한국역대인명정보, 위키백과)에서 확인되고 생몰년이 일치하는 인물입니다. 본관 기록이 없는 서훈자가 훨씬 많으므로 실제 이 가문의 독립유공자는 이보다 많을 수 있습니다.
| 이름 | 생몰년 | 본적 | 운동계열 | 훈격 | 본관 근거 | 공적조서 |
|---|---|---|---|---|---|---|
| 김규식金奎植 | 1881–1950 | 서울 | 임시정부 | 건국훈장 대한민국장(1989) | 역대인명정보 | 공훈록 ↗ |
친일 행적 기록 1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김관식金觀植
종교친일인명사전(민족문제연구소) 등재
장로교 목사이자 신학자로 일제 말 1945년 7월 일본기독교조선교단 통리를 맡는 등 교단의 전시 협력에 앞장섰다. 독립운동가 김규식의 6촌 종형이다.
출처 확인 ↗가문의 주요 인물
김식
조광조와 함께 개혁정치를 편 성리학자로 기묘사화 때 화를 입었다.
김육
영의정을 지내며 대동법을 확대 시행한 경세가이자 실학의 선구자이다.
김석주
우의정을 지낸 문신으로 숙종 대 정국을 주도했다.
명성왕후
김우명의 딸로 현종의 비이자 숙종의 어머니이다.
김재로
영조 때 영의정에 올라 노론을 이끈 문신으로, 아들 김치인도 영의정에 올라 부자 영상(領相)으로 불렸다.
김유정
《봄봄》·《동백꽃》을 남긴 소설가이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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