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녕 김씨
金寧 金氏
8명
확인 독립유공자
0명
수록 친일 기록
62.8만
2015 인구
13위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김시흥金時興
신라 경순왕의 후예로, 고려 인종 때 한림원을 거쳐 광록대부 평장사에 이르렀고 묘청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김녕군(金寧君)에 봉해졌다.
시조 김시흥이 고려 인종 때 묘청의 난 평정에 공을 세워 김녕군에 봉해진 데서 비롯되었다. 김녕(金寧)은 경상남도 김해의 옛 이름으로, 가락국의 중심지였고 고려 때 김훤이 밀성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김녕도호부로 승격된 바 있다. 신라 김씨계인 이 가문은 가야 수로왕계 김해 김씨(선김)와 구분해 '후김(後金)'이라 부르기도 한다.
가문의 역사
조선 세조 때 공조판서에 오른 김문기가 단종 복위 사건에 연루되어 처형되면서 가문이 큰 화를 입었고, 이후 본관을 김해 등으로 바꾸어 쓰다가 1885년 예조의 비준을 받아 시조가 봉군받은 '김녕'으로 복관했다. 김문기는 1977년 사육신의 한 사람으로 국사편찬위원회의 인정을 받았으며 충의공파가 가문의 중심 계보를 이룬다. 23개 주요 분파가 있고 분성 김씨·양근 김씨가 여기서 갈라져 나갔으며, 2015년 인구는 김녕·금녕 표기를 합산해 628,430명이다.
독립유공자 8명 확인
김병조金秉祚
건국훈장 대통령장3·1운동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평북 지역 만세운동을 조직한 뒤 상하이로 망명해 임시의정원 평안도 대표와 선전위원회 이사를 지냈고 만주 서간도에서 광복회를 조직했다. 1990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출처 확인 ↗김도현金道鉉
건국훈장 독립장을미사변 후 경북 영양에서 의병을 일으켜 안동으로 진군하는 등 경북 동북부에서 유격전을 펼쳤고 사재를 털어 검산성을 쌓아 항전을 준비했다. 나라를 잃자 동해 앞바다에 몸을 던져 순국했으며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출처 확인 ↗김법린金法麟
건국훈장 독립장1919년 동래 범어사 만세운동을 주도하고 상하이로 망명했으며, 프랑스 유학 중 피압박민족대회에 한국 대표로 참가했다. 1930년 한용운의 지도로 항일 비밀결사 만당(卍黨)을 조직했고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옥고를 치렀으며 1995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출처 확인 ↗김단야金丹冶
건국훈장 독립장3·1운동 때 김천 만세시위를 주도한 뒤 상하이로 망명해 고려공산청년회 간부로 활동했고, 6·10만세운동에 관여했으며 조선공산당 재건운동을 이끌었다. 1938년 소련에서 처형되었고 2005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출처 확인 ↗서훈자 명단 본관 확인 5명
국가보훈부 독립유공자 명단 중 본관이 공개 자료(한국역대인명정보, 위키백과)에서 확인되고 생몰년이 일치하는 인물입니다. 본관 기록이 없는 서훈자가 훨씬 많으므로 실제 이 가문의 독립유공자는 이보다 많을 수 있습니다.
친일 행적 기록 0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공개 자료에서 본관이 확인된 친일 행적 기록이 수록되지 않았습니다.
가문의 주요 인물
김시흥
고려 인종 때 묘청의 난을 평정하고 평장사에 오른 문신으로 김녕군에 봉해진 시조다.
김문기
세조 때 공조판서를 지내다 단종 복위를 도모하다 처형된 절신으로, 사육신의 한 사람으로 인정받았다.
김영삼
9선 국회의원과 야당 지도자를 거쳐 제14대 대통령을 지냈으며 하나회 해체와 금융실명제를 단행했다.
김석수
대법관을 거쳐 제34대 국무총리를 지낸 법조인이다.
김진표
경제부총리와 교육부총리를 지내고 제21대 국회 후반기 국회의장을 역임한 정치인이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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