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성 김씨
義城 金氏
16명
확인 독립유공자
0명
수록 친일 기록
28.7만
2015 인구
36위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김석金錫
신라 마지막 임금 경순왕의 아들이자 고려 태조 왕건의 외손으로 전해지며, 의성군(義城君)에 봉해져 후손들이 의성을 본관으로 삼았다.
시조 김석은 경순왕의 아들로 고려 초 의성군에 책봉되었고, 그 봉지(封地)를 따라 후손들이 본관을 의성으로 하였다. 의성은 경상북도 중앙부의 고을로 삼한시대 소문국(召文國)이 있던 곳이며, 940년 고려 태조 때 의성부로 승격되었다가 뒤에 의성현을 거쳐 오늘의 의성군이 되었다. 시조의 이름은 김중석(金重錫)으로도 전한다.
가문의 역사
고려 중기 김용비·김용필·김용주 삼형제 대에 이르러 계파가 갈렸으며, 이들은 각각 태자첨사·수사공·평장사를 지내 첨사공파·수사공파·충의공파의 뿌리가 되었다. 조선시대에는 김안국·김정국 형제와 학봉 김성일, 동강 김우옹 등 걸출한 문신·성리학자를 배출해 영남학파의 중심 가문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특히 안동 내앞(천전리) 마을은 한 마을에서만 수십 명의 독립유공자를 낸 곳으로, 단일 가문 기준 독립운동가를 가장 많이 배출한 문중으로 꼽힌다.
독립유공자 16명 확인
김창숙金昌淑
건국훈장 대한민국장호는 심산(心山). 파리장서 운동을 주도하고 임시정부 의정원 부의장을 지낸 유림계 최후의 지도자로, 광복 후 성균관대학교를 세워 초대 총장을 맡았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받았다.
출처 확인 ↗김동삼金東三
건국훈장 대통령장호는 일송(一松). 안동 내앞마을에 협동학교를 세우고 서간도로 망명해 경학사와 신흥강습소 설립에 참여했으며 서로군정서 참모장, 정의부 참모장을 지냈다. 1931년 하얼빈에서 체포되어 1937년 서대문형무소에서 옥사했고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출처 확인 ↗김하락金河洛
건국훈장 대통령장1895년 단발령에 반발해 이천에서 의병을 일으켜 남한산성을 점령하고 영남으로 남하했으며, 1896년 영덕 전투에서 총상을 입자 강물에 몸을 던져 순국했다. 198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출처 확인 ↗김붕준金朋濬
건국훈장 대통령장신민회와 청년학우회에서 활동하다 3·1운동 후 상하이로 망명해 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했고 임시의정원 의장과 국무위원을 역임했다. 1989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출처 확인 ↗김성범金成範
건국훈장 독립장1920년 국경지대 무장단체 천마별영의 오장으로 군자금 모집과 친일파 처단, 면사무소 습격 등을 전개하다 체포되어 평양형무소에서 순국했다. 1995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출처 확인 ↗김근수金根洙
건국훈장 애국장대한민국 임시정부 경무국에서 일하다 1940년 한국광복군에 참여해 중국 산시·화베이 지역에서 지하공작을 수행했다.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았다.
출처 확인 ↗김용환金龍煥
건국훈장 애족장학봉 김성일의 13대 종손으로, 노름꾼(파락호) 행세를 하며 종가 재산을 처분해 막대한 독립운동 자금을 댔고 의용단 서기로 활동했다.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출처 확인 ↗서훈자 명단 본관 확인 14명
국가보훈부 독립유공자 명단 중 본관이 공개 자료(한국역대인명정보, 위키백과)에서 확인되고 생몰년이 일치하는 인물입니다. 본관 기록이 없는 서훈자가 훨씬 많으므로 실제 이 가문의 독립유공자는 이보다 많을 수 있습니다.
| 이름 | 생몰년 | 본적 | 운동계열 | 훈격 | 본관 근거 | 공적조서 |
|---|---|---|---|---|---|---|
| 김창숙金昌淑 | 1879–1962 | 경상북도 성주 | 임시정부 | 건국훈장 대한민국장(1962) | 역대인명정보 | 공훈록 ↗ |
| 김하락金河洛 | 1846–1896 | 경상북도 의성 | 의병 | 건국훈장 대통령장(1982) | 역대인명정보 | 공훈록 ↗ |
| 김동삼金東三 | 1878–1937 | 경상북도 안동 | 만주방면 | 건국훈장 대통령장(1962) | 역대인명정보 | 공훈록 ↗ |
| 김붕준金朋濬 | 1888–? | 평안남도 용강 | 임시정부 | 건국훈장 대통령장(1989) | 역대인명정보 | 공훈록 ↗ |
| 김도화金道和 | 1825–1912 | 경상북도 안동 | 의병 | 건국훈장 애국장(1990) | 역대인명정보 | 공훈록 ↗ |
| 김세동金世東 | 1870–1942 | 경상북도 안동 | 국내항일 | 건국훈장 애국장(1993) | 역대인명정보 | 공훈록 ↗ |
| 김성로金聲魯 | 1885–1922 | 경상북도 안동 | 만주방면 | 건국훈장 애국장(1991) | 역대인명정보 | 공훈록 ↗ |
| 김근수金根洙 | 1912–1992 | 경상남도 기타 | 광복군 | 건국훈장 애국장(1990) | 위키백과 ↗ | 공훈록 ↗ |
| 김덕목金德穆 | 1912–1977 | 평안남도 용강 | 광복군 | 건국훈장 애국장(1990) | 역대인명정보 | 공훈록 ↗ |
| 김효숙金孝淑 | 1915–2003 | 평안남도 용강 | 광복군 | 건국훈장 애국장(1990) | 역대인명정보 | 공훈록 ↗ |
| 김흥락金興洛 | 1827–1899 | 경상북도 안동 | 의병 | 건국훈장 애족장(1995) | 역대인명정보 | 공훈록 ↗ |
| 김대락金大洛 | 1845–1915 | 경상북도 안동 | 만주방면 | 건국훈장 애족장(1990) | 위키백과 ↗ | 공훈록 ↗ |
| 김정호金丁鎬 | 1871–1919 | 경상북도 성주 | 3.1운동 | 건국훈장 애족장(2015) | 위키백과 ↗ | 공훈록 ↗ |
| 김중문金重文 | 1913–2009 | 경상북도 봉화 | 국내항일 | 건국훈장 애족장(1990) | 역대인명정보 | 공훈록 ↗ |
친일 행적 기록 0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공개 자료에서 본관이 확인된 친일 행적 기록이 수록되지 않았습니다.
가문의 주요 인물
김홍술
고려 태조를 도운 장수로 의성부성을 지키다 후백제군과 싸워 전사했다.
김안국
중종 때의 문신이자 성리학자로 《여씨향약》을 언해해 보급한 모재(慕齋)이다.
김성일
퇴계 이황의 문인으로 임진왜란 때 경상우도 초유사로 활약한 학봉(鶴峯)이다.
김우옹
남명 조식의 문인으로 대사성·이조참판을 지낸 문신·학자 동강(東岡)이다.
김창숙
독립운동가이자 유학자로 성균관대학교를 설립하고 초대 총장을 지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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