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문스캐너
본관 인구 4189만명 · 2015 인구주택총조사표기 변형 합산

경주 김씨

慶州 金氏

19

확인 독립유공자

4

수록 친일 기록

189만

2015 인구

4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김알지金閼智

《삼국사기》에 따르면 탈해 이사금 9년(65년) 왕이 금성 서쪽 시림에서 닭 우는 소리를 듣고 신하 호공을 보내니 소나무에 금궤가 걸려 있고 그 안에 사내아이가 있었다. 금궤에서 나왔다 하여 성을 김(金)이라 하고, 총명하고 지략이 뛰어나 알지라 불렀다고 전한다.

경주 김씨는 65년 계림(시림)의 금궤에서 나왔다는 김알지를 시조로 하며, 본관인 경주(慶州)는 신라의 수도로 월성 김씨라고도 한다. 김알지의 탄생을 계기로 국호를 계림으로 삼았다가 307년 신라로 바꾸었다고 전한다. 김알지의 7세손 미추 이사금이 김씨로서는 처음으로 왕위에 올랐고, 이후 마지막 경순왕까지 신라 왕실을 이어갔다.

가문의 역사

미추 이사금 이래 신라 56대 경순왕까지 왕위를 이은 신라 왕성(王姓)으로, 935년 경순왕이 고려에 귀부한 뒤에는 고려 조정의 유력 가문이 되었다. 고려 시대에는 《삼국사기》를 편찬한 김부식과 그 형 김부일 등이 중서령·태위에 올랐고, 조선 시대에는 김정·김홍욱·김흥경 등 문신과 영의정 김홍집을 배출했으며 정종 비 정안왕후, 숙종 비 인원왕후, 영조 계비 정순왕후 등 여러 왕비를 냈다. 경순왕과 낙랑공주의 후손임을 표방하는 계파를 포함해 수십 개 지파로 나뉘었으며, 2015년 기준 약 189만 명(월성 김씨 표기 합산)이다.

독립유공자 19명 확인

김교헌金敎獻

건국훈장 독립장

본관이 경주인 대한제국 말기의 문신으로 규장각 부제학을 지냈고, 대종교 제2대 교주가 되어 만주에서 포교와 항일운동을 병행하며 무오독립선언에 참여하였다.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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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덕金尙德

건국훈장 독립장

본관은 경주이고 경북 고령 출신으로 1919년 도쿄 2·8독립선언을 주도한 11인 가운데 한 사람이다. 임시의정원 의원과 조선민족혁명당 간부로 활동했고 광복 후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위원장을 맡았으며 1990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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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창金錫昌

건국훈장 독립장

본관은 경주이고 평안북도 철산 출신으로, 1920년 광복군총영 결사대가 선천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하도록 도왔다가 체포되어 징역 8년을 선고받고 평양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1928년 평안북도 예수교장로회 총회장을 지냈으며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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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제金光濟

건국훈장 애족장

충남 보령 출신으로 대구 광문사 사장을 지내며 1907년 서상돈과 함께 국채보상회를 조직해 국채보상운동을 전국으로 확산시켰다. 1982년 대통령표창에 이어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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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경金允經

건국훈장 애국장

호는 한결이며 본관은 경주로, 조선어학회 회원으로 한글 연구와 보급에 힘쓰다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투옥되었다. 광복 후 연희대학교 교수와 한글학회 이사를 지냈으며 1977년 건국포장에 이어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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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훈자 명단 본관 확인 17

국가보훈부 독립유공자 명단 중 본관이 공개 자료(한국역대인명정보, 위키백과)에서 확인되고 생몰년이 일치하는 인물입니다. 본관 기록이 없는 서훈자가 훨씬 많으므로 실제 이 가문의 독립유공자는 이보다 많을 수 있습니다.

이름생몰년본적운동계열훈격본관 근거공적조서
김교헌金敎獻1868–1923경기도 광주만주방면건국훈장 독립장(1977)역대인명정보공훈록 ↗
김태원金泰元1870–1908전라남도 나주의병건국훈장 독립장(1962)위키백과 ↗공훈록 ↗
김석창金錫昌1876–1950평안북도 선천만주방면건국훈장 독립장(1963)역대인명정보공훈록 ↗
김율金聿1882–1908전라남도 나주의병건국훈장 독립장(1995)역대인명정보공훈록 ↗
김중건金中建1889–1933함경남도 영흥만주방면건국훈장 독립장(1977)역대인명정보공훈록 ↗
김최명金最明1897–1964평안북도 선천만주방면건국훈장 독립장(1963)역대인명정보공훈록 ↗
김백선金伯善1873–1896경기도 양평의병건국훈장 애국장(1991)위키백과 ↗공훈록 ↗
김봉화金奉和1882–1919제주도 제주국내항일건국훈장 애국장(1995)역대인명정보공훈록 ↗
김도태金道泰1891–1956평안북도 정주3.1운동건국훈장 애국장(1990)위키백과 ↗공훈록 ↗
김윤경金允經1894–1969경기도 경성문화운동건국훈장 애국장(1990)역대인명정보공훈록 ↗
김마리아金嗎利亞1903–1970서울만주방면건국훈장 애국장(1990)역대인명정보공훈록 ↗
김해성金海星1907–1950평안북도 정주광복군건국훈장 애국장(1990)역대인명정보공훈록 ↗
김종주金鍾胄1864–1947전라남도 순천3.1운동건국훈장 애족장(1990)역대인명정보공훈록 ↗
김명돈金明敦1878–1956제주도 제주국내항일건국훈장 애족장(1995)역대인명정보공훈록 ↗
김정업金正業1882–1927전라북도 임실3.1운동건국훈장 애족장(1990)역대인명정보공훈록 ↗
김무석金武錫1887–1960제주도 제주국내항일건국훈장 애족장(1995)역대인명정보공훈록 ↗
김마리아金瑪利亞1903–?경기도 포천학생운동대통령표창(2018)위키백과 ↗공훈록 ↗

친일 행적 기록 4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김춘희金春熙

관료·조선귀족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정부 1,006명) 등재

본관이 경주인 대한제국 고위 관료로 성균관 대사성과 도승지, 황해도 관찰사, 궁내부 특진관 등을 지냈고, 한일병합 후 일본 정부로부터 남작 작위를 받았다. 1921년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에 임명되었으며 정부 발표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과 친일인명사전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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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석金信錫

경제·중추원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정부 1,006명) 등재

본관이 경주인 금융인으로 호남은행 지배인을 거쳐 1930년부터 전무이사를 지냈고 1936년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에 임명되었다. 정부 발표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과 친일인명사전에 중추원·경제 부문으로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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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원金錫源

군인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정부 1,006명) 등재

본관이 경주인 일본 육군사관학교 출신 장교로 중일전쟁에 참전해 대좌까지 올랐고 조선인 학병 지원을 독려하는 강연에 나섰다. 광복 후 대한민국 육군 소장을 지냈으며 정부 발표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과 친일인명사전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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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억金億

문화·문학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정부 1,006명) 등재

본관이 경주인 시인으로 호는 안서(岸曙)이며 한국 최초의 번역시집 《오뇌의 무도》를 낸 근대시의 개척자이다. 일제강점기 말 조선문인보국회 등에 참여해 전쟁 협력 시와 논설을 발표한 행적으로 두 명단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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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의 주요 인물

신라

김알지

65년 계림의 금궤에서 나왔다는 설화의 주인공으로 신라 김씨 왕조의 시조가 되었다.

고려

김부식

중서령에 오른 문신이자 학자로 현존 최고(最古)의 정사인 《삼국사기》 편찬을 주도하였다.

조선

김정

중종 때 형조판서를 지낸 사림파 문신으로 조광조와 함께 개혁을 추진하다 기묘사화로 사사되었다.

조선

김정희

호는 추사(秋史)로 독창적인 추사체를 완성하고 금석학을 개척한 조선 후기 최고의 서예가이자 실학자이다.

조선

김홍집

갑오개혁을 주도한 조선 말기의 총리대신으로 근대적 제도 개편을 추진하다 아관파천 직후 살해되었다.

조선

정순왕후

영조의 계비로 순조 즉위 후 수렴청정하며 정국을 주도한 왕비이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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