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산 김씨
商山 金氏
3명
확인 독립유공자
1명
수록 친일 기록
9.8만
2015 인구
97위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김수金需
고려 정종 때 보윤(甫尹)을 지낸 문관으로 신라 경순왕의 후예로 전한다. 경주 김씨에서 상주로 분적하면서 상산 김씨의 시조가 되었다.
시조는 고려 초 보윤을 지낸 김수(金需)로, 신라 경순왕의 후예가 상주(상산)로 분적하면서 비롯되었다. 본관 상산(商山)은 경상북도 상주시의 옛 이름으로, 신라 법흥왕 때 상주(上州), 신문왕 때 사벌주를 거쳐 757년 상주(尙州)로 정착한 고을이다. 상산 김씨는 시조를 달리하는 김조(金祚) 계통도 함께 상산을 본관으로 써 온 이조동성동본(異祖同姓同本)의 사례로도 알려져 있다.
가문의 역사
고려 말 김득배는 홍건적을 격퇴한 공으로 이름을 떨쳤고 그 아우 김득제·김선치 형제도 무공으로 상산군·상성군에 봉해졌다. 조선에서는 좌의정 김귀영, 청백리에 오른 대사헌 김덕함, 이조판서 김동필 등을 배출했다. 김조 계통은 상주파·재령파·선산파·성주파로 나뉘며, 봉산·서산·연풍·예천·제주·홍원·함평 김씨 등이 상산 김씨에서 분적했다.
독립유공자 3명 확인
김성숙金星淑
건국훈장 독립장봉선사 승려로 3·1운동에 참여해 옥고를 치른 뒤 중국으로 망명해 의열단 선전부장으로 활동했고, 1942년부터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참여해 내무부 차장을 지냈다. 198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출처 확인 ↗김기봉
건국훈장 애국장1907년 아버지 김용구가 전남 영광에서 기삼연의 호남창의회맹소 통령으로 기군하자 부친을 따라 의진에 종군했고, 전북 고창 안치(鞍峠) 전투에서 전사해 순국했다. 1963년 대통령표창에 이어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출처 확인 ↗김호
대통령표창1919년 3월 22일 경남 거창 장날 만세시위의 실행 위원으로 선출되어 수천 명이 참여한 시위를 주도하다 체포되어 징역 1년을 선고받고 진주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2018년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다.
출처 확인 ↗친일 행적 기록 1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김성균金聲均
관료친일인명사전(민족문제연구소) 등재
경성제국대학 사학과를 나와 조선총독부에서 도서·영화 검열 업무를 맡았고 일제의 영화통제정책을 옹호하는 글을 발표했다. 2009년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되었다.
출처 확인 ↗가문의 주요 인물
김득배
공민왕 때 홍건적을 격퇴한 공신으로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김선치
왜구와 홍건적 토벌에 공을 세워 상성군·낙성군에 봉해진 무장이다.
김귀영
선조 때 좌의정에 올라 상락부원군에 봉해진 문신이다.
김덕함
인조 때 대사헌을 지내고 청백리에 녹선된 문신으로 시호는 충정(忠貞)이다.
김태호
경상남도지사와 국회의원을 지낸 정치인이다.
김주호
농림수산부 장관과 부산시장을 지낸 공무원이다.
참고 자료
- https://ko.wikipedia.org/wiki/상산_김씨
- https://ko.wikipedia.org/wiki/김성숙_(1898년)
- https://e-gonghun.mpva.go.kr/user/ContribuReportDetail.do?goTocode=20001&pageTitle=Report&mngNo=7682
- https://e-gonghun.mpva.go.kr/user/ContribuReportDetail.do?goTocode=20001&pageTitle=Report&mngNo=960274
- https://ko.wikipedia.org/wiki/김성균_(19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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