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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인구 892.6만명 · 2015 인구주택총조사

광산 김씨

光山 金氏

11

확인 독립유공자

3

수록 친일 기록

92.6만

2015 인구

8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김흥광金興光

신라 왕자 출신으로 전하며, 나라가 어지러워지자 장차 국난이 일어날 것을 알고 무진주 추성군 서일동(현 전남 담양)에 은거하였다고 한다. 손자 김길이 고려 개국공신이 되어 삼중대광에 오르자 김흥광은 광산부원군에 봉해졌다.

광산 김씨는 신라 왕자로 전해지는 김흥광을 시조로 한다. 손자 김길이 고려 개국공신에 오르자 김흥광이 광산부원군에 봉해졌고, 조부의 작호이자 세거지인 광주 광산(光山)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왔다. 본관인 광산은 오늘날 광주광역시 광산구와 전라남도 담양군 일대에 해당한다. 후손 가운데 평장사가 8명이나 나와 그 마을을 평장동(平章洞)이라 불렀다고 전한다.

가문의 역사

고려 시대부터 평장사를 여덟 명이나 배출하며 명문으로 자리 잡았고, 조선 시대에는 문과 급제자 263명(문과 갑과 장원 12명), 정승 5명, 대제학 7명, 청백리 4명, 왕비 1명을 배출하였다. 예학의 대가 김장생이 문묘에 종사되고 그의 아들 김집도 문묘와 종묘에 배향되어 부자가 나란히 문묘에 오른 유일한 사례를 남겼으며, 김만기·김만중 형제가 대제학을 지내고 김만기의 딸이 숙종 비 인경왕후가 되었다. 양간공파 후손이 전체의 약 70%를 차지한다. 2015년 기준 약 93만 명이다.

독립유공자 11명 확인

김마리아金瑪利亞

건국훈장 독립장

본관은 광산이고 황해도 장연 출신으로 도쿄 유학 중 2·8독립선언에 참여하고 독립선언서를 국내에 반입하였다. 대한민국애국부인회를 조직해 회장을 맡았다가 체포되어 혹독한 고문의 후유증을 평생 안고 살았으며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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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애金淳愛

건국훈장 독립장

본관은 광산이고 김마리아의 친정 5촌 고모이며 독립운동가 김규식의 부인이다. 1919년 파리강화회의에 참석한 남편의 활동을 뒷받침하기 위해 국내에 잠입했고, 대한애국부인회 회장과 대한적십자사 간부로 활동하였다.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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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필순金弼淳

건국훈장 애족장

김순애의 오빠이자 김마리아의 삼촌으로 세브란스의학교를 졸업한 한국 최초의 면허 의사 7인 가운데 한 사람이다. 신민회에 참여했다가 중국으로 망명해 병원을 운영하며 독립운동 기지를 지원하였고 1977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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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수金綴洙

건국훈장 독립장

호는 지운(遲耘)이며 전북 부안 출신으로 와세다대학 유학 중 신아동맹단을 조직해 항일운동에 투신하였다. 일본·러시아·중국을 오가며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을 이끌었고 2005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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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훈자 명단 본관 확인 9

국가보훈부 독립유공자 명단 중 본관이 공개 자료(한국역대인명정보, 위키백과)에서 확인되고 생몰년이 일치하는 인물입니다. 본관 기록이 없는 서훈자가 훨씬 많으므로 실제 이 가문의 독립유공자는 이보다 많을 수 있습니다.

이름생몰년본적운동계열훈격본관 근거공적조서
김순애金淳愛1889–1976황해도 장연임시정부건국훈장 독립장(1977)위키백과 ↗공훈록 ↗
김마리아金瑪利亞1892–1944황해도 장연국내항일건국훈장 독립장(1962)역대인명정보공훈록 ↗
김석윤金錫允1877–1949제주도 제주의병건국훈장 애족장(1990)역대인명정보공훈록 ↗
김익수金益洙1880–1920전라남도 무안의병건국훈장 애족장(1990)역대인명정보공훈록 ↗
김영필金永弼1896–1976전라북도 진안국내항일건국훈장 애족장(1990)역대인명정보공훈록 ↗
김선기金善琪1907–1992서울문화운동건국훈장 애족장(1990)위키백과 ↗공훈록 ↗
김필례金弼禮1892–1983황해도 장연국내항일건국포장(2021)역대인명정보공훈록 ↗
김영수金英洙1881–?미상3.1운동대통령표창(2013)역대인명정보공훈록 ↗
김영두金永斗1895–1974경기도 양평국내항일대통령표창(2019)위키백과 ↗공훈록 ↗

친일 행적 기록 3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김영철金永哲

관료·조선귀족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정부 1,006명) 등재

본관이 광산인 구한말 관료로 한일병합 후 일본 정부로부터 조선귀족 남작 작위를 받았다. 정부 발표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과 친일인명사전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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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수金英洙

조선귀족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정부 1,006명) 등재

본관이 광산인 조선귀족으로 남작 김영철의 장남이며 아버지의 작위를 습작하였다. 정부 발표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과 친일인명사전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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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섭金永燮

종교(개신교)

친일인명사전(민족문제연구소) 등재

본관이 광산인 감리교 목사로 정동제일교회와 중앙감리교회 담임을 지냈다. 1938년 내선일체 정책을 위한 7인 특별위원회에 참여하고 1939년 조선·일본 감리교단 통합 회의에 전권위원으로 나서는 등 전시 협력 활동을 벌여 친일인명사전 종교 부문에 등재되었으며, 광복 후에는 하와이 총영사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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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의 주요 인물

조선

김장생

조선 예학을 집대성한 성리학자로 문묘에 종사되었으며 아들 김집도 문묘와 종묘에 배향되었다.

조선

김만중

대제학을 지낸 문신이자 《구운몽》과 《사씨남정기》를 지은 국문 소설의 개척자이다.

조선

인경왕후

대제학 김만기의 딸로 숙종의 첫 번째 왕비가 되었다.

근현대

김춘수

〈꽃〉으로 널리 알려진 시인으로 존재와 언어를 탐구한 무의미시를 개척하였다.

근현대

김황식

대법관과 감사원장을 거쳐 제41대 국무총리를 지낸 법조인 출신 정치인이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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