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풍 김씨
海豊 金氏
1명
확인 독립유공자
0명
수록 친일 기록
1.1만
2015 인구
335위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김숭선金崇善
신라 대보공 김알지의 후예로 고려조에 예부상서를 지내고 해풍부원군(海豐府院君)에 봉해졌다고 전한다. 그 봉작을 계기로 후손들이 해풍을 본관으로 삼았다. 해풍은 경기도 개풍군의 옛 지명이다.
시조 김숭선(金崇善)은 신라 대보공 김알지의 후예로, 고려조에 예부상서를 지내고 해풍부원군에 봉해졌다고 전한다. 그 봉작을 계기로 후손들이 해풍을 관향으로 삼았다. 본관 해풍(海豊)은 경기도 개풍군의 옛 지명으로, 고구려 때에는 정주(貞州)라 하였고 1018년 개성현에 속하였다가 1108년 승천부(昇天府)로 승격되었으며 1310년 해풍군으로 낮추어졌다. 이 지역은 여러 차례 행정구역이 바뀐 끝에 1930년 개풍군에 편입되었다. 경기도 화성 지역에는 조선 중종 때의 무신 김수종이 1500년 무렵 들어와 입향조가 되었다.
가문의 역사
화성 지역 입향조 김수종은 중종 대에 무과에 급제하여 길주목사와 길주병마첨절제사를 지냈다. 그의 맏아들 김대건은 무과에 장원으로 급제하고 진무원종공신 1등에 책록되었으며, 김시건은 문신으로 영국원종공신 1등에 올랐다. 김체건은 무과에 급제하여 북병사와 평안병사를 역임하였고, 김후는 정조가 화성을 쌓을 때 일역을 맡았다. 김시창은 조광조의 천거를 받았고 명종 대에 증직되었다. 1865년에 간행된 을축보에 일곱 개 지파가 실려 있으며 화성 일대의 후손은 남양쌍부파에 속한다. 집성촌은 경기도 화성시 우정읍 호곡리와 화산리, 장안면 장안리와 사곡리, 송산면 신천리 등지에 있으며 2015년 인구는 10,934명이다.
독립유공자 1명 확인
서훈자 명단 본관 확인 1명
국가보훈부 독립유공자 명단 중 본관이 공개 자료(한국역대인명정보, 위키백과)에서 확인되고 생몰년이 일치하는 인물입니다. 본관 기록이 없는 서훈자가 훨씬 많으므로 실제 이 가문의 독립유공자는 이보다 많을 수 있습니다.
| 이름 | 생몰년 | 본적 | 운동계열 | 훈격 | 본관 근거 | 공적조서 |
|---|---|---|---|---|---|---|
| 김태원金泰元 | 1863–1933 | 강원도 영월 | 의병 | 건국훈장 독립장(1993) | 역대인명정보 | 공훈록 ↗ |
친일 행적 기록 0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공개 자료에서 본관이 확인된 친일 행적 기록이 수록되지 않았습니다.
가문의 주요 인물
김수종
중종 대에 무과에 급제하여 길주목사와 길주병마첨절제사를 지냈다. 1500년 무렵 지금의 경기도 화성 지역에 들어와 이 지역 해풍 김씨의 입향조가 되었다.
김대건
입향조 김수종의 맏아들로 무과에 장원으로 급제하고 진무원종공신 1등에 책록되었다.
김체건
무과에 급제하여 북병사와 평안병사를 역임한 무신이다.
김시창
조광조의 천거를 받았으며 명종 대에 증직되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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