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김씨
全州 金氏
3명
확인 독립유공자
1명
수록 친일 기록
5.7만
2015 인구
140위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김봉모金鳳毛
고려 신종 때 추밀원부사로 발탁되어 문하시랑평장사에 오른 문신이다. 여진어와 한어에 두루 통해 금나라 사신이 올 때마다 접대를 맡아 늘 동각에 머물렀다고 전한다. 시호는 정평(靖平)이다.
전주 김씨는 신라 왕실 김알지의 후예로 전하며, 경주 김씨에서 갈라져 나온 계통이다. 시조 김봉모가 고려에서 문하시랑평장사에 오른 뒤 후손들이 전주를 관향으로 삼았고, 본관지는 지금의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1232년 문과에 급제해 한림학사와 문하시랑평장사를 지낸 김태서(金台瑞, ?~1257)를 전주 김씨의 비조로 기록하고 그 선계의 본관을 경주로 적고 있다. 김태서의 아들 김약선은 권신 최우의 사위였고, 손자 김경손은 대몽항쟁에서 큰 공을 세워 가문의 이름을 널리 알렸다.
가문의 역사
김경손(?~1251)은 1231년 몽골의 1차 침입 때 결사대 열두 명을 이끌고 귀주성에서 몽골군을 크게 무찔렀고, 1237년 전라도지휘사로서 나주에서 이연년 형제의 난을 진압해 추밀원부사에 올랐다. 그러나 1249년 최항의 모함으로 백령도에 유배되었다가 1251년 바다에 던져져 목숨을 잃었으며, 2007년 11월의 호국인물로 선정되었다. 조선시대에는 평안도와 함경도로 대거 이주가 이루어져 집성촌이 이북 지역에 크게 형성되었는데, 평안남도 평원군·영원군과 평양, 평안북도 희천·벽동·자성·강계·후창, 함경남도 함주·정평·영흥·고원·안변·이원·신흥, 함경북도 경성·명천·무산·경흥 등이 그러하며 남한에서는 경상북도 의성군에 세거지가 있다. 근현대에는 북간도 명동촌을 개척한 김약연과 한국 근대 단편소설의 선구자 김동인 등이 나왔다. 2015년 인구는 56,989명으로 경기 18,664명, 서울 15,094명, 인천 4,171명 등 수도권 거주자가 많다.
독립유공자 3명 확인
김약연金躍淵
건국훈장 독립장1900년 일가족과 함께 간도 용정으로 옮겨 가 이듬해 규암재를 세웠고, 이것이 명동서숙을 거쳐 명동학교와 명동여학교로 발전하면서 북간도 민족교육의 중심이 되었다. 간민회 결성을 주도해 회장을 맡았고 1918년 길림에서 무오독립선언에 참여했으며, 1932년부터 이듬해까지 한국독립당 고문 겸 당무위원으로 활동했다. 시인 윤동주의 외숙부이기도 하다.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출처 확인 ↗친일 행적 기록 1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김동인金東仁
문학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및 정부의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 등재
평양의 대부호 김대윤의 아들로, 1919년 도쿄에서 한국 최초의 순문예 동인지 《창조》를 창간하고 〈배따라기〉와 〈감자〉 등을 발표한 한국 근대 단편소설의 선구자다. 그러나 1937년 중일전쟁 이후 친일로 돌아서 문단사절로 중국 전선의 일본군을 위문하고 조선문인협회 등 친일단체에서 활동하며 내선일체를 선전했다.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발표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과 정부의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 함께 올랐다.
출처 확인 ↗가문의 주요 인물
김태서
1232년 문과에 급제해 한림학사를 거쳐 문하시랑평장사에 오른 문신으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그를 전주 김씨의 비조로 기록한다. 시호는 문장(文莊)이다.
김경손
1231년 귀주성에서 결사대 열두 명으로 몽골군을 무찌르고 1237년 나주에서 이연년 형제의 난을 진압해 추밀원부사에 오른 무장이다. 1249년 최항의 모함으로 유배되었다가 1251년 목숨을 잃었다.
김동원
안창호의 측근으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자 정치인으로, 소설가 김동인의 형이다.
참고 자료
같은 김씨의 다른 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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