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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인구 3191.3만명 · 2015 인구주택총조사

용궁 김씨

龍宮 金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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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인 독립유공자

0

수록 친일 기록

1.3만

2015 인구

319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김존중金存中

생년은 알 수 없고 1156년(의종 10)에 죽은 고려 전기의 문신이다. 인종 때 태자시학이 되어 과거에 급제하였고, 의종이 즉위한 뒤 우정언과 우승선을 지내며 왕의 총애를 받았다. 1154년에는 동지공거가 되어 과거를 주관하였다. 좌승선과 태자소보를 거쳐 용궁군(龍宮君)에 봉해졌으며, 죽은 뒤 수충내보동덕공신 이부상서 정당문학 수문전대학사에 추증되었다.

용궁 김씨는 고려 의종 때 태자소보를 지내고 용궁군에 봉해진 김존중을 시조로 한다. 후손들이 그가 봉군된 용궁을 본관으로 삼았다. 본관 용궁(龍宮)은 경상북도 예천군 용궁면 일대의 지명이다. 시조 김존중은 신라 경순왕의 후손으로 전하며, 원시조는 김알지로 받든다.

가문의 역사

고려 때 시조 김존중이 왕의 측근으로 권세를 누렸으나, 환관 정함과 결탁하여 벼슬을 팔았다는 기록도 함께 전한다. 경상남도 하동 지역에는 낭선재 김태백(金太白)의 후손들이 자리를 잡았는데, 김태백은 1593년 진주성 싸움에서 수성장으로 순절하였다. 그 아들 김준걸이 옥종면에서 양보면으로 옮겨 살면서 하동 세거의 터전이 마련되었고, 양보면 장암리 우성마을이 집성촌으로 남아 있다. 2000년 기준으로 하동에 거주하는 용궁 김씨는 198가구 467명이었으며, 2015년 인구는 12,569명이다.

독립유공자 0명 확인

이 가문에서 아직 확인된 독립유공자 정보가 없어요. 수록 기준은 국가보훈부 서훈자 중 본관이 공개 자료로 확인되는 인물입니다. 서훈자 명단에 있어도 본관 기록이 공개 자료에 없으면 목록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친일 행적 기록 0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공개 자료에서 본관이 확인된 친일 행적 기록이 수록되지 않았습니다.

가문의 주요 인물

고려

김존중

고려 의종 때 우승선과 태자소보 등을 지낸 문신으로 용궁 김씨의 시조이다. 시를 잘 지었다고 전하며, 1154년 동지공거로 과거를 주관하였다.

조선

김태백

1560년에 태어나 1593년에 죽었으며 호는 낭선재이다. 1593년 진주성 싸움에서 수성장으로 싸우다 순절하였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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