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 김씨
靈光 金氏
2명
확인 독립유공자
0명
수록 친일 기록
3.8만
2015 인구
175위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김심언金審言
신라 경순왕의 후예로 전하는 고려의 문신이다. 성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현종 대에 예부상서와 상서내사시랑평장사를 거쳐 서경유수를 지냈다. 문안공(文安公)의 시호를 받고 오성군에 봉해졌으며, 오성은 영광의 옛 이름이므로 후손들이 영광을 본관으로 삼았다.
시조는 고려의 문신 김심언(金審言)으로, 신라 경순왕의 후예로 전한다. 성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현종 대에 예부상서와 상서내사시랑평장사를 거쳐 서경유수에 이르렀고, 문안공의 시호를 받고 오성군에 봉해졌다. 오성은 영광의 옛 이름으로, 이로부터 후손들이 영광을 본관으로 삼게 되었다. 영광은 백제 때 무시이군이었다가 757년 무령군으로, 940년 고려 초에 영광군으로 이름이 바뀐 고을이며 별호는 정주(靜州)이다. 지금의 전라남도 북서부 해안에 있는 영광군이다.
가문의 역사
문중은 경파·영광파·장흥파·문장파·양사파·용강파·삼화파·강계파 등 여덟 개 파로 나뉘며,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 12명을 배출하였다. 고려 중기에는 동북면병마사를 지낸 김보당이 나왔고, 조선에서는 관찰사를 지낸 김필(1426~1470)과 성종 때의 문신 김괴(1450~1482), 조광조의 문인으로 학문에 힘쓴 김광원(1478~1550) 등이 활동하였다. 일제강점기에는 의병으로 나선 김규철과 한국광복군에서 활동한 김문택이 독립운동에 참여하여 서훈을 받았다. 집성촌은 전라남도 장흥군·영광군·장성군과 충청남도 태안군, 울산광역시, 경기도 화성시 등 아홉 곳에 형성되었다. 2015년 인구는 38,338명이다.
독립유공자 2명 확인
친일 행적 기록 0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공개 자료에서 본관이 확인된 친일 행적 기록이 수록되지 않았습니다.
가문의 주요 인물
김보당
고려 중기의 문신으로 동북면병마사를 지냈다.
김필
세종에서 성종 대에 걸쳐 활동한 문신으로 관찰사를 지냈다.
김광원
조광조의 문인으로 학문에 힘쓴 학자이다.
김태정
제48대 법무부 장관을 지냈다.
참고 자료
같은 김씨의 다른 가문
다른 가문 찾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