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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인구 1465.3만명 · 2015 인구주택총조사

언양 김씨

彦陽 金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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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인 독립유공자

0

수록 친일 기록

5.3만

2015 인구

146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김수金壽

고려에서 신호위 별장 동정을 지낸 인물로, 경순왕의 일곱째 아들 김선(金鐥)의 후예로 전한다. 그러나 가문이 크게 일어선 것은 7세손 김취려 대의 일이어서, 김취려를 사실상의 시조로 받든다.

시조 김수의 7세손 김취려가 거란을 물리친 공으로 언양군(彦陽君)에 봉해지면서 후손들이 언양을 본관으로 삼았다. 언양은 지금의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 일대로, 신라 때 거지화현이었다가 757년 헌양현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1413년 언양현으로 개편되었다가 1914년 폐지되었다. 시조의 계통은 경주 김씨에서 갈라진 경순왕의 후예로 전해진다. 김취려의 묘는 지금도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에 남아 있다.

가문의 역사

중시조 김취려(1172~1234)는 금오위 대장군 김부(金富)의 아들로, 1216년 거란 유종이 침략하자 후군을 지휘해 전공을 세우고 몽골군과 연합해 강동성을 함락시켰으며, 이때 몽골과 고려 사이에 형제맹약이 맺어졌다. 그는 평장사 판병부사와 문하시중에 올랐고 시호는 위열(威烈)이며 고종의 묘정에 배향되었다. 아들 김전은 태부를 지내고 익대공(翼戴公) 시호를 받았고, 손자 김변은 문과에 급제해 태학사를 지내며 문신공(文愼公) 시호를 받아 3대가 나란히 현달하였다. 조선에 들어와서는 임진왜란 때 나주에서 의병을 일으킨 김천일이 창의사의 군호를 받고 활약하다 1593년 제2차 진주성 전투에서 성이 함락되자 아들 김상건과 함께 남강에 몸을 던졌다. 집성촌은 전북 김제·정읍·남원, 전남 담양, 충남 서천·천안, 경기 광주·안성, 강원 횡성, 경남 합천 등지에 분포한다. 2015년 인구는 52,652명이다.

독립유공자 0명 확인

이 가문에서 아직 확인된 독립유공자 정보가 없어요. 수록 기준은 국가보훈부 서훈자 중 본관이 공개 자료로 확인되는 인물입니다. 서훈자 명단에 있어도 본관 기록이 공개 자료에 없으면 목록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친일 행적 기록 0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공개 자료에서 본관이 확인된 친일 행적 기록이 수록되지 않았습니다.

가문의 주요 인물

고려

김취려

1216년 거란 유종의 침략을 격퇴하고 강동성을 함락시켜 언양군에 봉해진 무장으로, 문하시중에 올랐고 시호는 위열이며 고종의 묘정에 배향되었다.

고려

김전

김취려의 아들로 태부를 지냈고 익대공(翼戴公) 시호를 받았다.

조선

김천일

임진왜란 때 나주에서 의병을 일으켜 창의사의 군호를 받고 한강변의 왜군 진영을 급습했으며, 1593년 제2차 진주성 전투에서 순절한 의병장으로 시호는 문열(文烈)이다.

조선

김준

무과에 급제해 안주 목사를 지낸 무신으로 시호는 장무공(壯武公)이다.

근현대

김동조

제16대 외무부 장관을 지낸 외교관이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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