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흥 김씨
瑞興 金氏
0명
확인 독립유공자
0명
수록 친일 기록
3.6만
2015 인구
182위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김보金寶
고려 경종 말엽에서 성종 초엽에 걸쳐 금오위 정용중랑장을 지낸 인물이다.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삼고 서흥을 본관으로 하여 계대를 이어 왔다.
시조는 고려 경종 말엽에서 성종 초엽에 걸쳐 금오위 정용중랑장을 지낸 김보(金寶)이다. 본관 서흥은 고구려 때 오곡군 또는 우차탄홀로 불렸고, 757년 신라에서 오관군으로, 940년 고려에서 동주군으로 고쳤다가 1270년에 안태로 불린 뒤 서흥으로 이름이 바뀐 고을이다. 지금의 황해북도 북부에 해당한다. 서흥 김씨는 고려 말에 이 지역의 향리 집안으로 자리를 잡았으며, 문중은 경기파와 영남 현풍파(장파·중파·계파), 호남 나주파, 호남 해남파, 초계파 등 일곱 개 파로 나뉜다.
가문의 역사
가문을 대표하는 인물은 조선 전기의 성리학자 김굉필(金宏弼, 1454~1504)이다. 그는 김종직의 문하에서 배우며 소학에 심취해 스스로를 소학동자(小學童子)라 일컬었고 벼슬은 형조정랑에 이르렀다. 1498년 무오사화 때 김종직의 문도로서 붕당을 만들었다는 죄목으로 유배되었고, 1504년 갑자사화에서 무오 당인이라는 죄목으로 극형에 처해졌다. 뒤에 신원되어 1610년 광해군 2년에 정여창·조광조·이언적·이황과 함께 오현(五賢)으로 문묘에 종사되었으며, 서흥의 화곡서원 등에 배향되었다. 집성촌은 황해도 금천군과 대구 달성군, 경기도 안성시, 경상남도 합천군·창녕군·밀양시·의령군, 전라남도 나주시 등에 형성되었다. 2015년 인구는 36,402명이다.
독립유공자 0명 확인
이 가문에서 아직 확인된 독립유공자 정보가 없어요. 수록 기준은 국가보훈부 서훈자 중 본관이 공개 자료로 확인되는 인물입니다. 서훈자 명단에 있어도 본관 기록이 공개 자료에 없으면 목록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친일 행적 기록 0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공개 자료에서 본관이 확인된 친일 행적 기록이 수록되지 않았습니다.
가문의 주요 인물
김굉필
김종직의 문인으로 소학에 심취해 스스로를 소학동자라 일컬은 조선 전기의 성리학자이다. 무오사화로 유배되고 갑자사화 때 극형을 받았으며, 1610년 오현의 한 사람으로 문묘에 종사되었다. 시호는 문경(文敬)이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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