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 인구 554위2,283명 · 2015 인구주택총조사
남양 김씨
南陽 金氏
0명
확인 독립유공자
0명
수록 친일 기록
2,283
2015 인구
554위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김적金頔
가락국 수로왕의 후손으로, 고려 고종 때 나라에 변란이 있을 것을 예상하고 남양 산곡(南陽山谷)으로 옮겨 살았다고 전한다.
시조 김적(金頔)은 가락국 수로왕의 후손으로, 고려 고종 때 남양 산곡에 이주하여 정착하였다고 전한다. 이후 후손 김약해(躍海)가 조선 태조를 도와 공을 세워 남양백(南陽伯)에 봉해지자 후손들이 남양을 본관으로 삼았다. 남양은 경기도 수원 일대에 해당하는 옛 지명이다.
가문의 역사
조선 전기에 성균진사 김계가 1498년 무오사화에 연루되어 화를 입었고, 소위장군을 지낸 김장유와 전적을 지낸 김종례 등이 전한다. 2015년 인구는 2,283명이다.
독립유공자 0명 확인
이 가문에서 아직 확인된 독립유공자 정보가 없어요. 수록 기준은 국가보훈부 서훈자 중 본관이 공개 자료로 확인되는 인물입니다. 서훈자 명단에 있어도 본관 기록이 공개 자료에 없으면 목록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친일 행적 기록 0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공개 자료에서 본관이 확인된 친일 행적 기록이 수록되지 않았습니다.
가문의 주요 인물
조선
김계
1436년에 태어나 성종 때 성균진사가 되었으며, 1498년 무오사화에 연루되어 화를 입은 인물이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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