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김씨
廣州 金氏
1명
확인 독립유공자
0명
수록 친일 기록
2.8만
2015 인구
211위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김녹광金祿光
고려 고종 23년인 1236년 몽고군이 침입해 왔을 때 상장군으로 출정하여 이를 격퇴한 공으로 광주군(廣州君)에 책봉되고 광주를 식읍으로 하사받았다고 전한다. 부산역사문화대전은 그를 신라 경순왕의 다섯째 아들 의성군 김석(金錫)의 7세손으로 보아, 후손들이 의성 김씨에서 분적하여 광주를 본관으로 삼은 것으로 설명한다. 다만 『조선씨족통보』에는 관향은 있으나 시조가 상고되지 않는 성씨라 적혀 있어 초기 계보에는 이설이 있다.
시조 김녹광이 몽고군을 격퇴한 공으로 광주군에 봉해지고 광주를 식읍으로 받으면서 후손들이 광주를 본관으로 삼았다고 전한다. 본관 광주(廣州)는 경기도 광주시 일대로, 전라도의 광주(光州)와는 다른 지역이다. 부산역사문화대전에 따르면 김녹광은 경순왕의 다섯째 아들 의성군 김석의 7세손으로, 그 후손이 의성 김씨에서 갈라져 나와 광주를 본관으로 하고 그를 시조로 삼았다고 한다. 다만 『조선씨족통보』는 광주 김씨를 관향은 있으나 시조를 상고할 수 없는 성씨로 기록하여 상계에는 이설이 남아 있다. 후대에 크게 영남계와 황해계로 나뉘었고, 영남계는 다시 동래파와 밀양파로 갈라졌으며 영남계의 파조는 김훤의 아들 김남물(金南物)이다. 파명으로는 참의공파, 호수공파, 해수공파, 양무공파, 구몽공파, 구봉공파, 은간공파, 옥산공파 등이 있다.
가문의 역사
시조의 아들 김굉(金閎)이 1213년 강종 2년 문과에 급제하고 공민왕 때 홍건적을 물리쳐 경성수복 1등 공신에 봉해졌으며, 손자 김훤(金晅)이 1260년 원종 원년 문과에 급제하여 정당문학과 찬성사에 올라 명문의 지위를 굳혔다. 김훤의 아들 김개물(金開物)은 충선왕 때 감찰사와 전부시승을 지내고 시와 글씨, 그림에 두루 능하였다고 전한다. 조선에 들어와 김남물의 3세손 공조참판 김차문(金次文)이 1400년대 전반 동래로 옮겨 가 부산 지역 입향조가 되었고, 그 후손들이 동래향교의 중요 직임을 맡으며 동래의 으뜸 사족으로 자리 잡았다. 임진왜란 때에는 김태허(金太虛)가 울산군수로서 울산성 전투에서 큰 전공을 세워 1605년 선무원종공신 1등에 책록되었고, 판관 김기(金琦)는 의병을 이끌고 동래성 전투에서 순절하였다. 1937년 문기주가 편찬한 『동래군지』 성씨조에 광주 김씨가 세거 성씨로 올라 있으며,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반송동과 동래구 온천동, 금정구 선동, 기장군 정관읍 등지에 세거해 왔다. 2015년 인구는 28,156명이다.
독립유공자 1명 확인
김상윤金相潤
건국훈장 애족장호는 초산(楚山)이며 본관은 광주(廣州)이다. 1897년 경상남도 밀양에서 태어나 3·1운동에 참여한 뒤 중국으로 망명하여 신흥무관학교에서 수학하였고, 1919년 11월 만주 길림에서 김원봉·윤세주 등과 함께 의열단을 창단한 초기 단원이다. 1927년 중국 푸젠성에서 사망하였으며, 1968년 건국공로 대통령표창을 받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수여되었다.
출처 확인 ↗친일 행적 기록 0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공개 자료에서 본관이 확인된 친일 행적 기록이 수록되지 않았습니다.
가문의 주요 인물
김굉
시조 김녹광의 아들로 1213년 강종 2년 문과에 급제하였고, 공민왕 때 왜구를 격퇴하여 전라도추포부사와 전라양광도방어사를 지냈으며 홍건적을 물리친 공으로 경성수복 1등 공신에 봉해졌다.
김훤
1234년에 태어나 1260년 원종 원년 문과에 급제하고 금주방어사를 지냈으며, 충렬왕 때 밀직학사, 충선왕 때 정당문학과 보문각대학사, 찬성사를 역임한 당대의 명신이다.
김태허
1580년 선조 13년 무과에 급제하여 임진왜란 때 밀양부사로 분전하고 울산군수로 옮겨 울산성 전투에서 도원수 권율을 도와 큰 전공을 세워 당상관에 올랐다. 1605년 선무원종공신 1등에 책록되고 경상좌도병마절도사와 오위도총부도총관을 거쳐 지중추부사에 이르렀으며 시호는 양무(襄武)이다.
김상휴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판의금부사를 지내고 예문관제학과 이조판서를 역임하였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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