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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인구 3071.4만명 · 2015 인구주택총조사

고성 김씨

固城 金氏

0

확인 독립유공자

0

수록 친일 기록

1.4만

2015 인구

307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김말로왕金末露王

소가야를 세운 인물로 전한다. 김수로왕과 함께 구지봉에서 탄강한 여섯 동자 가운데 막내로 금란에서 태어났다는 설화가 전해진다. 소가야는 약 460년간 이어지다가 502년 신라에 항복하였고 656년에 완전히 신라에 병합되었다고 한다.

시조 말로왕이 세웠다는 소가야의 옛 터전이 곧 이 가문의 관향인 고성이다. 고성은 경상남도 중남부에 자리한 고을로 본래 변한의 고자미동국 또는 고사포국이 있던 곳이라 전한다. 737년 신라에 흡수되어 고자군으로 불리다가 757년 고성군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후대에는 철성부로 승격되기도 하였다. 후손은 정랑공파(김원량), 판서공파(김희량), 연파공파(김문량), 초당공파(김인길), 소경공파(김성겸), 상지공파(김형겸) 등 여섯 갈래로 나뉘어 계세하였다.

가문의 역사

고려 충렬왕 때 김윤화가 문과에 급제해 추밀원 지주사를 지냈다. 조선 초에는 김빈길이 낙안읍성을 쌓고 왜구를 토벌하는 데 공을 세워 삼도수군도절제사에 올랐으며 시호는 양혜이다. 김경현은 이시애의 난 때 공을 세워 함길도 순무중군을 지냈고, 임진왜란 때는 월촌 김사홍의 후손인 김우추가 활동하였다. 근현대에는 을사조약 이후 오대산에 은둔한 김봉섭과 보통학교를 세워 민족정신을 일깨운 김중오가 있다. 집성촌은 인천광역시 강화군 선원면 금월리를 비롯해 나주시·순천시·당진시·청주시 등 전국에 흩어져 있다. 2015년 인구는 13,735명이다.

독립유공자 0명 확인

이 가문에서 아직 확인된 독립유공자 정보가 없어요. 수록 기준은 국가보훈부 서훈자 중 본관이 공개 자료로 확인되는 인물입니다. 서훈자 명단에 있어도 본관 기록이 공개 자료에 없으면 목록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친일 행적 기록 0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공개 자료에서 본관이 확인된 친일 행적 기록이 수록되지 않았습니다.

가문의 주요 인물

고려

김윤화

충렬왕 때 문과에 급제하여 추밀원 지주사를 지낸 문신이다.

조선

김빈길

낙안읍성을 쌓고 왜구를 토벌하는 데 공을 세운 무신으로 삼도수군도절제사를 지냈다. 시호는 양혜이다.

조선

김경현

이시애의 난 때 공을 세워 함길도 순무중군을 지낸 무신이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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