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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인구 2921.6만명 · 2015 인구주택총조사

고령 김씨

高靈 金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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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인 독립유공자

0

수록 친일 기록

1.6만

2015 인구

292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김남득金南得

초명은 김기지(金麒芝)로 고려 충혜왕 때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공민왕 때 상주목사와 감찰집의, 양광도안렴사를 지냈고 최유의 난을 평정하는 데 공을 세워 고양부원군(高陽府院君)에 봉해졌다.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받들고 고령을 관향으로 삼았다.

시조 김남득이 고양부원군에 봉해지면서 후손들이 고령을 본관으로 삼았다. 고령은 757년(신라 경덕왕 16) 전국을 9주로 개편할 때 고령군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고려시대에는 영천현으로 불리다가 1895년 현감 체제에서 군 체제로 바뀌었으며 지금의 경상북도 고령군에 해당한다. 후손은 고산파와 신녕파, 충주파, 노성장선파, 김제파, 공주합천달성파, 양천파, 순천공파, 고령파, 노성죽헌파, 합천묘성파 등 열한 파로 나뉜다.

가문의 역사

고려 말 시조의 아들 김무는 공양왕 때 사헌장령을 지내며 정몽주와 함께 고려 왕조를 지키려 하다가 조선이 서면서 화를 입었다. 조선에서는 김구가 문과에 급제해 병조참판에 올랐고 김사문은 사헌부집의, 김사충은 승지, 김사행은 여산군수와 홍산군수를 지냈다. 임진왜란 때는 김면이 의병을 일으켜 왜군과 싸우고 경상병마절도사에 올랐으며 김연도 의병장으로 활약하였다. 집성촌은 충청남도 논산시와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울산광역시, 경상남도 양산시 일대에 형성되었다. 2015년 인구는 15,611명이다.

독립유공자 0명 확인

이 가문에서 아직 확인된 독립유공자 정보가 없어요. 수록 기준은 국가보훈부 서훈자 중 본관이 공개 자료로 확인되는 인물입니다. 서훈자 명단에 있어도 본관 기록이 공개 자료에 없으면 목록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친일 행적 기록 0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공개 자료에서 본관이 확인된 친일 행적 기록이 수록되지 않았습니다.

가문의 주요 인물

고려

김무

시조 김남득의 아들로 공양왕 때 사헌장령을 지냈고 정몽주와 함께 고려 왕조를 지키려 하다가 조선 건국 후 화를 입었다.

조선

김구

문과에 급제해 병조참판을 지낸 문신이다.

조선

김면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왜군과 싸우고 경상병마절도사에 오른 의병장이다.

조선

김연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한 인물이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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