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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인구 2372.3만명 · 2015 인구주택총조사

개성 김씨

開城 金氏

0

확인 독립유공자

0

수록 친일 기록

2.3만

2015 인구

237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김용주金龍珠

신라 경순왕의 후예로 전하며 1054년(고려 문종 8) 문과에 급제한 문신이다. 여진족 정벌에 공을 세워 추충공신에 책록되었고 개성부사와 평장사를 지낸 뒤 개성군(開城君)에 봉해졌다. 후손들이 그 봉군지를 따라 개성을 본관으로 삼았다.

개성 김씨는 경순왕의 후예로 전하는 김용주를 시조로 하며, 원시조는 김알지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용주가 여진 정벌의 공으로 개성군에 봉해지자 후손들이 개성을 관향으로 삼았다. 일부 문헌에서는 정신공 김준(金晙)을 중시조로 기록하기도 한다. 본관 개성(開城)은 고려의 수도로, 삼한시대 대방의 터였고 고구려 때 부소갑, 신라 때 송악군으로 불리다가 919년 고려 태조가 도읍을 정하면서 국도가 되었다. 지금은 황해북도 개성시에 해당한다. 이 가문에서 설성 김씨(雪城金氏)가 분적하였다.

가문의 역사

고려시대에는 김준이 여진을 평정하고 이부상서와 평장사에 올랐으며, 김지선이 보문각 대제학을, 김원이 상장군을 지냈다. 조선시대에는 임진왜란 때 활약한 인물이 여럿 나왔다. 김황은 군수를 지내고 중봉 조헌의 스승으로 알려졌으며 왜란이 일어나자 거병하였고, 김지는 공주목사로서 의병장으로 나섰으며, 김절은 금산 전투에서 순절하였다. 김여량은 1633년 문과에 급제하여 승지를 지냈다. 집성촌은 평안남도 용강군과 충청북도 영동군 일대에 형성되었다. 2000년 20,341명으로 조사되었고 2015년 인구는 22,793명이다.

독립유공자 0명 확인

이 가문에서 아직 확인된 독립유공자 정보가 없어요. 수록 기준은 국가보훈부 서훈자 중 본관이 공개 자료로 확인되는 인물입니다. 서훈자 명단에 있어도 본관 기록이 공개 자료에 없으면 목록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친일 행적 기록 0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공개 자료에서 본관이 확인된 친일 행적 기록이 수록되지 않았습니다.

가문의 주요 인물

고려

김준

여진을 평정한 공으로 이부상서와 평장사에 오른 문신이다. 시호는 정신(貞信)이며 일부 문헌에서는 개성 김씨의 중시조로 기록된다.

조선

김황

군수를 지낸 인물로 중봉 조헌의 스승으로 알려졌으며,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거병하였다.

조선

김지

공주목사를 지냈으며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동한 인물이다.

조선

김여량

1633년 문과에 급제하여 승지를 지낸 문신이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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