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덕 장씨
興德 張氏
2명
확인 독립유공자
0명
수록 친일 기록
5.9만
2015 인구
135위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장유張儒
후백제 영주 사람으로, 후삼국의 난을 피해 중국 오월(吳越)로 건너갔다가 중국어를 익히고 돌아온 인물이다. 고려 광종 때 예빈성에서 중국 사신 접대를 맡았고 광평시랑(廣平侍郞)을 지냈다.
흥덕(興德)은 백제 때 상칠현이었다가 757년 상질현(尙質縣)으로 고쳐졌고, 1018년 이후 장덕현(章德縣)을 거쳐 1308년 흥덕으로 개칭되었다. 1914년 흥덕면으로 줄어 고창군에 통합되었으며, 지금의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흥덕면이다. 시조 장유가 이 고장 사람이었던 까닭에 후손들이 흥덕을 관향으로 삼았다. 흥성(興城)은 흥덕의 다른 이름으로, 같은 가문이 흥덕 장씨와 흥성 장씨 두 표기로 함께 불리며 인구조사에서도 두 이름이 따로 집계된다. 후손은 시중공파·둔암공파·중직공파 등 25개 분파로 갈라졌다.
가문의 역사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 14명을 배출하였다. 시조의 아들 장연우(954~1015)는 1011년 거란이 쳐들어왔을 때 현종을 나주까지 호종했고, 중추사와 판어사대사를 거쳐 1015년 호부상서에 올랐다가 그해 세상을 떠나 상서우복야에 추증되었다. 그는 1014년 군액 증가로 부족해진 녹봉 문제를 해결하려다 김훈·최질의 난이 일어나 사적에서 제명되었으나 이듬해 복직하였다. 고려 말 문과에 오른 장윤화(?~1422)는 조선에서 이조참의와 전라도 관찰사를 지냈고, 장경세(1547~1615)는 선조 때 증광문과에 급제해 공주제독관과 승문원박사를 역임했다. 집성촌은 남원시·정읍시·곡성군·장수군·부안군·영광군·화순군 등 호남 일대 11개 지역에 분포한다. 2015년 인구는 흥덕 장씨 37,423명과 흥성 장씨 21,973명을 합해 59,396명이다.
독립유공자 2명 확인
친일 행적 기록 0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공개 자료에서 본관이 확인된 친일 행적 기록이 수록되지 않았습니다.
가문의 주요 인물
장연우
거란의 침입 때 현종을 호종하고 1015년 호부상서에 오른 문신으로, 사후 상서우복야에 추증되었다.
장윤화
고려 말 문과에 급제하고 조선에서 이조참의와 전라도 관찰사를 지낸 문신이다.
장경세
선조 때 증광문과에 급제해 공주제독관과 승문원박사를 지낸 문신이다.
장지량
제9대 공군참모총장을 지낸 군인이다.
장태평
농림수산식품부 장관과 한국마사회 회장을 지낸 관료다.
참고 자료
같은 장씨의 다른 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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