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문스캐너
본관 인구 1724만명 · 2015 인구주택총조사

안동 장씨

安東 張氏

3

확인 독립유공자

0

수록 친일 기록

4만

2015 인구

172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장정필張貞弼

처음 이름은 장길(張吉)이며, 본래 당나라 절강성 사람이었다고 전한다. 9세기 말 난을 피해 아버지를 따라 신라로 건너와 강릉과 안동에 머물다가 만년에 안동에 정착하였다. 930년 고창전투에서 김선평·권행과 함께 왕건을 도와 견훤의 군대를 크게 무찌른 공으로 태사(太師)의 지위에 올랐고, 고창군이 안동부로 승격되면서 안동을 본관으로 하사받았다고 전한다.

시조는 장정필(張貞弼)로 처음 이름은 장길(張吉)이며, 본래 당나라 절강성에서 태어났다고 전한다. 9세기 말 난을 피해 아버지를 따라 신라로 건너와 강릉과 안동에 머물다가 만년에 안동에 자리 잡았다. 930년 고창전투에서 김선평·권행과 함께 왕건을 도와 견훤의 군대를 크게 무찔렀고, 그 공으로 삼중대광 태사에 올라 고창군에 봉해졌다. 이때 고창군이 안동부로 승격되면서 안동을 본관으로 삼게 되었다고 전한다. 본관 안동은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이며, 안동 장씨는 안동 김씨·안동 권씨와 함께 안동을 대표하는 세거 성씨로 꼽힌다.

가문의 역사

문중은 화산군파·부령군파·예산군파·청송군파 등의 주요 파와 60여 개의 소파로 나뉘며,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는 4명이 확인된다. 고려 말에는 장사길(張思吉)이 조선 개국공신에 올랐고, 무관 장철(張哲)은 위화도회군에 참여하여 공신이 되었다. 조선 중기에는 장흥효(1564~1633)가 퇴계의 학맥을 이어 안동에서 후학을 길렀고, 정부인 안동 장씨는 여성이 쓴 최초의 조리서로 평가되는 음식디미방을 남겼다. 집성촌은 안동시 서후면 금계리에 있으며, 장흥효의 후손 40여 호가 서후면 성곡리에 종가와 함께 세거한다. 2015년 인구는 39,939명이다.

독립유공자 3명 확인

서훈자 명단 본관 확인 3

국가보훈부 독립유공자 명단 중 본관이 공개 자료(한국역대인명정보, 위키백과)에서 확인되고 생몰년이 일치하는 인물입니다. 본관 기록이 없는 서훈자가 훨씬 많으므로 실제 이 가문의 독립유공자는 이보다 많을 수 있습니다.

이름생몰년본적운동계열훈격본관 근거공적조서
장윤덕張胤德1872–1907경상북도 예천의병건국훈장 독립장(1968)역대인명정보공훈록 ↗
장준하張俊河1915–1975평안북도 삭주광복군건국훈장 애국장(1991)위키백과 ↗공훈록 ↗
장경범張慶範1898–1972경기도 개성3.1운동건국훈장 애족장(1990)위키백과 ↗공훈록 ↗

친일 행적 기록 0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공개 자료에서 본관이 확인된 친일 행적 기록이 수록되지 않았습니다.

가문의 주요 인물

고려

장사길

고려 말의 무장으로, 조선이 서는 데 공을 세워 개국공신에 올랐다.

고려

장철

고려 말의 무관으로 위화도회군에 참여한 공신이다.

조선

장흥효

퇴계 이황의 학맥을 이은 학자로 안동에서 후학을 길렀다.

근현대

장준하

해방 이후 언론인이자 정치인으로 활동하였다.

근현대

장기려

의학자로 활동하였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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