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문스캐너
본관 인구 1268.2만명 · 2015 인구주택총조사표기 변형 합산

인동 장씨

仁同 張氏

11

확인 독립유공자

1

수록 친일 기록

68.2만

2015 인구

12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장금용張金用

고려 초 삼중대광 신호위 상장군(三重大匡 神虎衛 上將軍)을 지낸 무장이다. 후손들이 옥산(玉山) 일대에 대대로 살면서 가문의 터전을 잡았다.

인동(仁同)은 경상북도 구미시와 칠곡군에 걸쳐 있던 옛 인동군 일대의 지명으로, 옛 이름은 옥산이었다. 시조 장금용의 후손이 옥산에 정착해 본관을 옥산으로 삼았으나 행정구역 명칭이 바뀌면서 인동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고, 그래서 옥산 장씨와 인동 장씨는 같은 계통이다. 인동 장씨에는 장금용을 시조로 하는 상장군계와 장계(張桂)를 시조로 하는 직제학계가 따로 있는데, 상장군계가 압도적으로 큰 계통이다.

가문의 역사

고려 초부터 천 년 가까이 인동 지역에 세거하며 종가와 유적을 지켜 온 영남의 대표적 사족 가문이다. 조선시대에는 여헌 장현광이 영남 예학과 성리학의 종장으로 이름을 떨쳤고, 인조반정 이후 도원수를 지낸 장만 등이 배출되었다. 근현대에는 국무총리를 지낸 장면과 장택상을 함께 배출해 정계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원래 27개 파였으나 현재는 남산파·진가파·함평파·청주파 등 25개 분파로 이어지며, 옥산 장씨 표기까지 합한 2015년 인구는 681,825명으로 장씨 본관 가운데 가장 크다(위키백과는 상장군계만으로 591,312명으로 집계한다).

독립유공자 11명 확인

장진홍張鎭弘

건국훈장 독립장

1927년 10월 조선은행 대구지점에 폭탄을 던진 의거를 결행했고, 체포된 뒤 사형을 선고받자 옥중에서 자결했다. 1962년 건국훈장 국민장(현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출처 확인 ↗

장석영張錫英

건국훈장 독립장

칠곡 출신 유학자로 을사조약 때 이승희·곽종석과 함께 오적 처단을 청하는 상소를 올렸고, 3·1운동 직후 파리장서(파리평화회의 독립청원서) 작성에 참여했다. 성주 만세운동으로 징역 2년을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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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건상張建相

건국훈장 대통령장

상하이 동제사에 가입한 이래 임시정부 외무부 차장, 의열단, 조선민족혁명당을 거쳐 1940년대 임시정부 국무위원 겸 학무부장을 지냈다. 해방 후에는 제2대 국회의원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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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훈자 명단 본관 확인 9

국가보훈부 독립유공자 명단 중 본관이 공개 자료(한국역대인명정보, 위키백과)에서 확인되고 생몰년이 일치하는 인물입니다. 본관 기록이 없는 서훈자가 훨씬 많으므로 실제 이 가문의 독립유공자는 이보다 많을 수 있습니다.

이름생몰년본적운동계열훈격본관 근거공적조서
장건상張建相1882–1974경상남도 부산임시정부건국훈장 대통령장(1986)위키백과 ↗공훈록 ↗
장태수張泰秀1841–1910전라북도 김제계몽운동건국훈장 독립장(1962)역대인명정보공훈록 ↗
장기석張基奭1860–1911경상북도 성주계몽운동건국훈장 애국장(1990)역대인명정보공훈록 ↗
장지영張志暎1887–1976서울문화운동건국훈장 애국장(1990)역대인명정보공훈록 ↗
장지락張志樂1905–1938평안북도 용천중국방면건국훈장 애국장(2005)위키백과 ↗공훈록 ↗
장충식張忠植1836–1901충청북도 단양의병건국훈장 애족장(1992)역대인명정보공훈록 ↗
장익환張益煥1866–1937충청북도 단양의병건국훈장 애족장(1990)역대인명정보공훈록 ↗
장홍염張洪琰1910–1990전라남도 목포학생운동건국훈장 애족장(1993)위키백과 ↗공훈록 ↗
장병윤張炳允1914–1983제주도 제주국내항일건국훈장 애족장(1993)역대인명정보공훈록 ↗

친일 행적 기록 1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장직상張稷相

중추원·경제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정부 1,006명) 등재

경상북도 관찰사 장승원의 아들이자 국무총리 장택상의 형으로, 은행과 회사를 세운 대구 지역 실업가였다. 1926년부터 세 차례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지냈고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과 친일인명사전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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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의 주요 인물

고려

장안세

고려 말 덕녕부윤을 지내고 조선 개국 후 벼슬을 거부한 절의의 인물이다.

조선

장현광

여헌(旅軒)이라는 호로 불린 성리학자로 영남 학맥의 큰 줄기를 이룬 산림처사다.

조선

장만

인조 때 도원수로 이괄의 난을 진압한 무신으로 옥성부원군에 봉해졌다.

근현대

장면

제2공화국 국무총리이자 초대 주미대사를 지낸 정치인이다.

근현대

장택상

초대 외무부 장관과 제3대 국무총리를 지낸 정치인이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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