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례 장씨
求禮 張氏
0명
확인 독립유공자
0명
수록 친일 기록
1.7만
2015 인구
275위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장악張岳
안동 장씨 시조 장정필의 8대손으로 고려 인종 때 문하시중을 지냈다. 고향을 그리워하는 뜻을 내비치자 임금이 봉성을 식읍으로 내리고 봉성군(鳳城君)에 봉하였다고 전한다. 묘소는 전라남도 구례군 구례읍 백련리에 있다.
시조 장악이 봉성을 식읍으로 받고 봉성군에 봉해지면서 후손들이 구례를 관향으로 삼았다. 봉성(鳳城)은 구례의 별호다. 구례는 본래 백제의 구지차현이었는데 757년(신라 경덕왕 16) 구례현으로 고쳐졌으며 지금의 전라남도 구례군에 해당한다. 구례 장씨는 안동 장씨에서 갈라져 나온 계통으로 전한다.
가문의 역사
과거 급제자로는 문과 2명과 무과 5명, 사마시 합격자 6명을 배출하였다. 조선에서는 장필무가 1543년 무과에 급제해 함경도병마절도사에 오르고 청백리에 녹선되었다. 장의현은 1591년 장흥부사로 부임해 임진왜란 때 왜군과 맞섰다. 장지현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추풍령에서 싸우다 순절하였다. 2015년 인구는 17,241명이다.
독립유공자 0명 확인
이 가문에서 아직 확인된 독립유공자 정보가 없어요. 수록 기준은 국가보훈부 서훈자 중 본관이 공개 자료로 확인되는 인물입니다. 서훈자 명단에 있어도 본관 기록이 공개 자료에 없으면 목록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친일 행적 기록 0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공개 자료에서 본관이 확인된 친일 행적 기록이 수록되지 않았습니다.
가문의 주요 인물
장필무
1510년에 태어나 1574년에 세상을 떠난 무장으로 1543년 무과에 급제해 함경도병마절도사에 올랐고 청백리에 녹선되었다.
장의현
1591년 장흥부사로 부임하였고 임진왜란 때 왜군과 싸운 무장이다.
장지현
1536년에 태어나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추풍령에서 싸우다 1593년 순절한 의병장이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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