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주 정씨
海州 鄭氏
0명
확인 독립유공자
0명
수록 친일 기록
4.5만
2015 인구
157위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정숙鄭肅
고려 신종 때 문과에 급제해 전법정랑과 중현대부 전객서령을 지낸 인물이다.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받들어 해주를 관향으로 삼았다. 중시조로는 고려 말 소부 소윤을 지내고 정헌대부 이조판서에 추증된 정언(鄭琂)을 비롯해 정초와 정역을 꼽는다.
시조 정숙의 후손들이 황해도 해주를 관향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왔다. 해주는 본래 고구려의 내미홀(內米忽)이었는데 고려 태조 때 해주로 이름이 바뀌었고, 지금은 황해남도 해주시다. 후손은 종파를 비롯해 오정공파와 삼옥공파, 주부공파, 허암공파, 행촌공파, 봉사공파, 농포공파, 용강공파, 승지공파 등 모두 25개 파로 나뉘어 계세하였다. 조선 초기에 왕실과 혼맥을 맺으면서 서북 지역 명문에서 중앙 사족으로 자리를 굳혔다.
가문의 역사
조선시대에 문과 급제자 62명을 배출하였다. 정역(?~1425)은 1383년 이방원과 함께 문과에 급제한 인연으로 조선 개국 뒤 요직을 거쳐 1420년 집현전 대제학에 올랐고, 딸이 효령대군에게 출가해 왕실의 인척이 되었다. 그의 장남 정충경은 동부승지와 형조참판, 강원도관찰사, 한성부윤을 지냈다. 정미수(1456~1512)는 문종의 딸 경혜공주의 아들로 중종반정에 공을 세워 해평부원군에 봉해졌다. 임진왜란 때는 정문부(1565~1624)가 함경도에서 의병을 모아 왜군을 격파한 북관대첩을 이끌었으나, 1624년 이괄의 난에 동조했다는 누명을 쓰고 고문을 받다 세상을 떠났고 1667년 신원되어 시호 충의(忠毅)를 받았다. 집성촌은 황해도 은율군과 평안남도 룡강군, 경기도 연천군, 전라남도 구례군, 충청남도 천안시, 경상남도 진주시 등지에 분포한다. 2015년 인구는 45,101명이다.
독립유공자 0명 확인
이 가문에서 아직 확인된 독립유공자 정보가 없어요. 수록 기준은 국가보훈부 서훈자 중 본관이 공개 자료로 확인되는 인물입니다. 서훈자 명단에 있어도 본관 기록이 공개 자료에 없으면 목록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친일 행적 기록 0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공개 자료에서 본관이 확인된 친일 행적 기록이 수록되지 않았습니다.
가문의 주요 인물
정역
1383년 이방원과 함께 문과에 급제하고 조선 개국 뒤 요직을 거쳐 1420년 집현전 대제학에 오른 문신으로, 효령대군의 장인이다.
정충경
정역의 장남으로 동부승지와 형조참판, 강원도관찰사, 한성부윤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정미수
호는 우재이며 문종의 딸 경혜공주의 아들로, 중종반정에 공을 세워 해평부원군에 봉해졌다.
정문부
1588년 식년문과에 갑과로 급제했고 임진왜란 때 함경도에서 삼천여 명의 의병을 모아 왜군을 격파한 북관대첩을 이끌었으며, 1624년 이괄의 난에 연루되었다는 누명으로 옥사한 뒤 1667년 신원되어 충의(忠毅) 시호를 받았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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