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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인구 1544.6만명 · 2015 인구주택총조사

청주 정씨

淸州 鄭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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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인 독립유공자

0

수록 친일 기록

4.6만

2015 인구

154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정극경鄭克卿

고려 의종 때 중랑장을 지낸 인물이다.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받들어 청주를 관향으로 삼았다. 가문이 크게 일어선 것은 고려 원종 때 문과에 급제한 정해(鄭瑎) 대의 일이다.

시조 정극경의 후손들이 충청북도 청주를 관향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왔다. 청주는 신라 때 서원경이 설치된 중부 내륙의 요충으로, 이 가문 인물들이 받은 서원군(西原君)·청하군(淸河君) 같은 봉호에도 그 지명이 남아 있다. 후손은 7세조인 설헌(雪軒)과 설곡(雪谷)에 이르러 비로소 두 파로 나뉘었다. 설헌계에서는 북지파와 영순파, 고성파 등이 갈라졌고, 설곡계에서는 옹진파와 장단파, 제주파 등이 갈라져 나왔다.

가문의 역사

고려시대에 문과 급제자 7명, 조선시대에 문과 급제자 20명을 배출하였다. 정해는 고려 원종 때 문과에 합격해 광정대부 도첨의찬성사에 올랐고, 그 아들 정책은 통헌대부 판선공사를 지내고 청하군에 봉해졌으며, 또 다른 아들 정오는 공민왕 때 1등공신으로 첨의평리에 올라 서원군에 봉해져 3부자가 나란히 현달하였다. 조선 중기에는 퇴계 이황과 남명 조식에게 배운 한강 정구(1543~1620)가 나와 예학을 체계화하고 오선생예설분류와 심경발휘를 저술했으며, 창녕현감과 강원도관찰사, 청주목사 등 주로 외직을 맡으면서 342명에 이르는 문인을 길러 남인과 북인 학맥의 밑거름을 놓았다. 집성촌은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태2리를 비롯해 예천군과 성주군 등 경북 지역에 집중되어 있다. 2015년 인구는 46,419명이다.

독립유공자 0명 확인

이 가문에서 아직 확인된 독립유공자 정보가 없어요. 수록 기준은 국가보훈부 서훈자 중 본관이 공개 자료로 확인되는 인물입니다. 서훈자 명단에 있어도 본관 기록이 공개 자료에 없으면 목록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친일 행적 기록 0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공개 자료에서 본관이 확인된 친일 행적 기록이 수록되지 않았습니다.

가문의 주요 인물

고려

정해

고려 원종 때 문과에 합격해 광정대부 도첨의찬성사에 오른 문신이다.

고려

정책

정해의 아들로 통헌대부 판선공사를 지내고 청하군에 봉해졌다.

고려

정오

정해의 아들로 공민왕 때 1등공신이 되어 첨의평리에 오르고 서원군에 봉해졌다.

조선

정구

호는 한강이며 퇴계 이황과 남명 조식에게 배워 예학을 체계화한 학자로, 오선생예설분류와 심경발휘를 저술하고 강원도관찰사와 청주목사 등을 지내며 342명에 이르는 문인을 길렀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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