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 정씨(鄭)
羅州 鄭氏
한글 표기가 같은 다른 가문이 있어요: 나주 정씨(丁)
1명
확인 독립유공자
0명
수록 친일 기록
3.8만
2015 인구
177위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정해鄭諧
고려 중엽에 나주에 세거한 인물이다. 증손 정가신이 문과에 급제하여 재상의 반열에 오르면서 군기감(軍器監)에 추증되었다.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삼고 나주를 본관으로 하였다.
시조는 고려 중엽의 인물 정해(鄭諧)이다. 그의 증손 정가신(鄭可臣)이 문과에 급제하고 벽상삼한삼중대광에 이르자 정해도 군기감(軍器監)에 추증되었으며, 후손들이 나주를 본관으로 삼았다. 본관 나주는 영산강 유역의 고을로 지금의 전라남도 나주시이다. 같은 나주를 본관으로 쓰면서 성씨 한자가 다른 나주 정씨(丁氏)와는 계통이 전혀 다른 가문이므로 구별해야 한다.
가문의 역사
가문의 기틀을 세운 인물은 정가신(1224~1298)으로, 충렬왕과 충선왕 대에 문한관으로 활동하며 보문각대제와 승지를 거쳐 정당문학과 첨의중찬에 올랐다. 1290년에는 세자가 원나라로 갈 때 스승으로 수행하였고 이듬해에도 정당문학으로서 원나라에 사행하여 외교에서 이름을 남겼으며, 호경대왕부터 원종까지의 역사를 정리한 천추금경록(千秋金鏡錄)을 편찬하였다. 조선시대에는 문과 급제자 6명을 배출하였다. 집성촌은 전라남도 나주시·무안군·함평군, 전북특별자치도 장수군·완주군·익산시, 충청남도 부여군·서천군, 경기도 화성시 등 열네 곳에 형성되었다. 근현대에는 제37대 합동참모의장을 지낸 정승조와 제50대 법무부 차관을 지낸 정진호 등이 나왔다. 2015년 인구는 37,960명이다.
독립유공자 1명 확인
서훈자 명단 본관 확인 1명
국가보훈부 독립유공자 명단 중 본관이 공개 자료(한국역대인명정보, 위키백과)에서 확인되고 생몰년이 일치하는 인물입니다. 본관 기록이 없는 서훈자가 훨씬 많으므로 실제 이 가문의 독립유공자는 이보다 많을 수 있습니다.
| 이름 | 생몰년 | 본적 | 운동계열 | 훈격 | 본관 근거 | 공적조서 |
|---|---|---|---|---|---|---|
| 정석진鄭錫珍 | ?–1896 | 전라남도 나주 | 의병 | 건국훈장 애국장(2010) | 역대인명정보 | 공훈록 ↗ |
친일 행적 기록 0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공개 자료에서 본관이 확인된 친일 행적 기록이 수록되지 않았습니다.
가문의 주요 인물
정가신
충렬왕과 충선왕 대의 문신으로 정당문학과 첨의중찬을 지냈다. 원나라에 여러 차례 사행하여 외교에서 활약하였고 천추금경록을 편찬하였으며, 시호는 문정(文靖)이다.
정광호
제9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정승조
제37대 합동참모의장을 지냈다.
참고 자료
같은 정씨의 다른 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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