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래 정씨
東萊 鄭氏
8명
확인 독립유공자
2명
수록 친일 기록
47.5만
2015 인구
18위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정회문鄭繪文
동래현의 안일호장(安逸戶長)을 지낸 인물로 동래 정씨의 시조로 받든다. 세계가 분명하게 이어지는 기세조는 정지원(鄭之遠)이다.
본관 동래(東萊)는 부산광역시 동래구 일대의 옛 지명으로, 시조 정회문이 동래현의 호장을 지내면서 후손들이 이곳을 본관으로 삼았다. 기세조 정지원의 손자 정목이 1072년(고려 문종 26) 예부시에 급제해 대부경에 이른 뒤 중앙 관료 가문으로 자리 잡았고, 정목의 넷째 아들 정항도 1102년 과거에 급제했다. 3세 정목의 형제와 후손을 중심으로 호장공파·교서랑공파·첨사공파 등으로 갈라졌다.
가문의 역사
고려 인종~의종대 정항과 그의 아들 정서(〈정과정곡〉의 작자)를 배출하며 문벌로 성장했고, 조선에서는 문과 급제자 198명과 정승 17명을 내어 전주 이씨 다음으로 많은 상신을 배출한 가문으로 꼽힌다. 영의정 정광필, 정태화, 정원용을 비롯해 우의정 정지연·정재숭·정홍순 등이 이어져 '정승 가문'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근현대에는 국학자 정인보와 한글학자 정인승이 나왔으며, 2015년 인구는 474,506명이다.
독립유공자 8명 확인
정인보鄭寅普
건국훈장 독립장동제사에 참여해 상하이에서 활동한 뒤 국내로 돌아와 국학 연구와 언론을 통해 민족의식을 고취했고, 안재홍·문일평과 함께 1930년대 조선학 운동을 이끌었다. 해방 후 초대 감찰위원장을 지냈다.
출처 확인 ↗서훈자 명단 본관 확인 8명
국가보훈부 독립유공자 명단 중 본관이 공개 자료(한국역대인명정보, 위키백과)에서 확인되고 생몰년이 일치하는 인물입니다. 본관 기록이 없는 서훈자가 훨씬 많으므로 실제 이 가문의 독립유공자는 이보다 많을 수 있습니다.
| 이름 | 생몰년 | 본적 | 운동계열 | 훈격 | 본관 근거 | 공적조서 |
|---|---|---|---|---|---|---|
| 정인보鄭寅普 | 1893–1950 | 서울 | 문화운동 | 건국훈장 독립장(1990) | 역대인명정보 | 공훈록 ↗ |
| 정화암鄭華巖 | 1896–1981 | 전라북도 김제 | 중국방면 | 건국훈장 독립장(1983) | 역대인명정보 | 공훈록 ↗ |
| 정인승鄭寅承 | 1897–1986 | 전라북도 장수 | 문화운동 | 건국훈장 독립장(1962) | 역대인명정보 | 공훈록 ↗ |
| 정인호鄭寅琥 | 1869–1945 | 경기도 양주 | 국내항일 | 건국훈장 애국장(1990) | 역대인명정보 | 공훈록 ↗ |
| 정진화鄭鎭華 | 1873–1945 | 경상북도 예천 | 국내항일 | 건국훈장 애국장(1990) | 역대인명정보 | 공훈록 ↗ |
| 정충환鄭忠煥 | 1888–1962 | 경기도 양주 | 의병 | 건국훈장 애국장(1990) | 역대인명정보 | 공훈록 ↗ |
| 정한조鄭瀚朝 | 1890–1945 | 전라북도 김제 | 국내항일 | 건국포장(1993) | 역대인명정보 | 공훈록 ↗ |
| 정진숙鄭鎭肅 | 1912–2008 | 충청남도 천안 | 국내항일 | 대통령표창(2017) | 역대인명정보 | 공훈록 ↗ |
친일 행적 기록 2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가문의 주요 인물
정서
유배지에서 임금을 그리며 〈정과정곡〉을 지은 고려의 문신이다.
정광필
중종 때 영의정으로 기묘사화에서 조광조를 변호한 문익공이다.
정창손
세조~성종대 세 차례 영의정을 지낸 문신으로 《고려사》 편찬에 참여했다.
정태화
효종·현종대 다섯 차례 영의정에 오른 문신으로 예송 논쟁을 조정했다.
정인보
양명학과 실학을 연구한 국학자로 광복 후 제헌헌법 전문과 국경일 노래 가사를 지었다.
정진석
제13대 천주교 서울대교구장을 지낸 추기경이다.
참고 자료
같은 정씨의 다른 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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