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문스캐너
본관 인구 9410.4만명 · 2015 인구주택총조사

초계 정씨

草溪 鄭氏

3

확인 독립유공자

3

수록 친일 기록

10.4만

2015 인구

94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정배걸鄭倍傑

초계 성산 출신으로 1017년(고려 현종 8) 문과에 장원급제해 예부상서·중추원사에 올랐고, 1080년 홍문광학추성찬화공신에 추증되었다. 시호는 홍문(弘文)이다.

시조 정배걸(鄭倍傑)은 고려 현종 때 문과에 장원급제하고 문종 대에 중추원부사로 과거를 주관했으며 예부상서·중추원사에 올랐다. 그가 세운 홍문공도(弘文公徒)는 고려 사학 12도의 하나로 꼽힌다. 아들 정문(鄭文)을 중시조로 삼는다. 본관 초계(草溪)는 경상남도 합천군 초계면 일대의 옛 고을이다.

가문의 역사

내급사공파·천호장공파·대제학공파·박사공파·대사성공파의 5개 대파로 나뉘어 경남 합천·거창과 전국에 세거했다. 조선시대에는 광해군의 인목대비 폐모론에 반대하다 제주에 위리안치되고 병자호란 때 척화를 주장하며 자결을 시도한 동계 정온(鄭蘊)이 대표적 인물로, 거창 동계 종택이 지금도 전한다. 명종 대 윤원형의 첩으로 권세를 부린 정난정도 이 가문 출신이다. 근현대에는 국회의원·법조인·군 장성과 문화예술계 인사를 폭넓게 배출했다.

독립유공자 3명 확인

정현숙鄭賢淑

건국훈장 애족장

남편 오광선을 따라 만주로 건너가 신흥무관학교 인근에서 황무지를 개간해 독립군에게 식량을 대며 '만주의 어머니'로 불렸고, 1941년 한국혁명여성동맹 결성에 참여하고 한국독립당원으로 활동했다.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출처 확인 ↗

정경시鄭慶時

건국훈장 애족장

천도교인으로 1919년 3월 23일 양평군 청운면 용두리 장날에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해 징역 2년을 살았고, 출옥 직후인 1920년 6월 대한독립단에 가입해 임시정부 격문 배포와 군자금 모집을 이어갔다. 1980년 대통령표창,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출처 확인 ↗

정재선鄭在先

대통령표창

1919년 3월 22일 경북 영일군 청하면 덕성리 장터에서 윤영복·오용간 등이 주도한 독립만세시위에 참가해 태극기를 들고 행진하다 체포되어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개월을 살았다. 2004년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다.

출처 확인 ↗

친일 행적 기록 3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정봉시鄭鳳時

종교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정부 1,006명) 등재

1908년 친일 성향의 대동학회에서 지방총무·평의원을 맡았고 경학원에 오래 재직하며 유림계의 대표적 친일 인사가 되었으며, 일본 천황을 칭송하는 시를 지어 헌상했다. 친일인명사전에도 수록되었다.

출처 확인 ↗

정연기鄭然基

관료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정부 1,006명) 등재

조선총독부 관료로 태평양전쟁 말기 국민총력조선연맹 근로부장과 국민동원총진회 이사를 맡았고 1945년 대화동맹 이사와 대의당 위원으로 활동했다. 친일인명사전에도 수록되었다.

출처 확인 ↗

정호봉鄭鎬鳳

중추원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정부 1,006명) 등재

강원도 횡성 출신의 일제강점기 관료로 1927년부터 1930년까지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지냈다. 친일인명사전에도 수록되었다.

출처 확인 ↗

가문의 주요 인물

고려

정배걸

문과 장원 출신으로 사학 12도의 하나인 홍문공도를 세운 교육자이자 문신이다.

조선

정온

동계(桐溪)라는 호로 알려진 문신으로 폐모론에 반대하고 병자호란 때 척화를 주장한 절의의 상징이다.

조선

정윤겸

조선 전기 무신으로 왜구 토벌에 공을 세웠다.

근현대

정현백

성균관대 사학과 교수 출신으로 제6대 여성가족부 장관을 지냈다.

근현대

정호섭

제31대 해군참모총장을 지낸 군인이다.

근현대

정우성

영화배우이자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로 활동한 문화예술인이다.

참고 자료

같은 씨의 다른 가문

다른 가문 찾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