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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인구 3041.4만명 · 2015 인구주택총조사

풍산 김씨

豊山 金氏

2

확인 독립유공자

0

수록 친일 기록

1.4만

2015 인구

304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김문적金文迪

신라 대보공 김알지의 후예로 전하는 고려의 인물이다. 고려 고종 때 나라에 공을 세워 좌리공신 판상사에 올랐고 풍산백(豊山伯)에 봉해졌다. 후손들이 그 봉호를 따라 풍산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 왔다.

풍산 김씨는 고려 고종 때 좌리공신 판상사에 오르고 풍산백에 봉해진 김문적을 시조로 한다. 시조가 받은 봉호에 따라 후손들이 풍산을 본관으로 삼았으며, 7세 김안정이 고려 말 삼사좌윤을 지내 중시조로 받들어진다. 김자순의 후손들이 안동 풍산 땅에 자리를 잡으면서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가문의 터전이 마련되었다. 본관 풍산은 신라의 하지현(下枝縣)이었다가 757년 영안(永安)으로 고쳐졌고 923년 풍산현이 되었으며, 오늘날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일대이다.

가문의 역사

가문은 조선시대에 문과 29명, 무과 27명, 생원시 69명, 진사시 33명의 급제자와 음관 12명을 배출하였다. 안동 풍산읍 오미리는 풍산 김씨가 오랜 세월 세거해 온 동성 마을로, 본래 다섯 산줄기가 뻗어 있다 하여 오릉동(五陵洞)이라 불렀는데 김양진의 아들 김의정이 을사사화를 겪고 낙향하면서 오무동(五畝洞)으로 고쳤다고 전한다. 중종 때 이조참판을 거쳐 삼도 방백을 지낸 청백리 김양진과 그의 증손 김대현이 가문의 이름을 크게 높였고, 김대현의 여덟 아들이 모두 진사시에 합격하고 그 가운데 김봉조·김영조·김연조·김응조·김숭조가 문과에 오르자 임금이 마을 이름을 오미(五美)로 내렸다고 전한다. 대종가인 안동 허백당 종택은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으며, 마을에는 김대현과 그 아들들을 기리는 오미동 도림강당이 남아 있다. 집성촌은 경기도 김포, 충청북도 중원, 경상북도 봉화·안동, 황해도 연백·평산 등에 형성되었고, 근대에는 의열단원 김지섭이 이 가문에서 나왔다. 2015년 인구는 14,311명이다.

독립유공자 2명 확인

김지섭金祉燮

건국훈장 대통령장

1885년 경상북도 안동에서 태어난 독립운동가로 자는 위경(衛卿), 호는 추강(秋岡)이다. 1922년 중국 상하이에서 의열단에 가입해 기밀부 특파원으로 활동하였고, 1924년 1월 5일 도쿄 니주바시에 폭탄을 던졌으나 터지지 않아 현장에서 붙잡혔다.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지바형무소에서 복역하던 중 1928년 2월 20일 뇌내출혈로 순국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출처 확인 ↗

서훈자 명단 본관 확인 2

국가보훈부 독립유공자 명단 중 본관이 공개 자료(한국역대인명정보, 위키백과)에서 확인되고 생몰년이 일치하는 인물입니다. 본관 기록이 없는 서훈자가 훨씬 많으므로 실제 이 가문의 독립유공자는 이보다 많을 수 있습니다.

이름생몰년본적운동계열훈격본관 근거공적조서
김지섭金祉燮1884–1928경상북도 안동중국방면건국훈장 대통령장(1962)역대인명정보공훈록 ↗
김만수金萬秀1892–1924경상북도 안동만주방면건국훈장 독립장(1963)역대인명정보공훈록 ↗

친일 행적 기록 0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공개 자료에서 본관이 확인된 친일 행적 기록이 수록되지 않았습니다.

가문의 주요 인물

조선

김양진

1467년에 태어나 1535년에 죽은 문신으로 호는 허백당(虛白堂)이다. 중종 때 이조참판을 거쳐 삼도 방백을 지냈고 청백리에 뽑혔다. 그의 종택인 안동 허백당 종택은 풍산 김씨의 대종가로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조선

김의정

김양진의 아들로, 을사사화가 일어나자 고향으로 돌아와 마을 이름 오릉동을 오무동으로 고쳤다고 전한다.

조선

김대현

김양진의 증손으로 여덟 아들이 모두 진사시에 합격하고 그 가운데 김봉조·김영조·김연조·김응조·김숭조 다섯이 문과에 올라 가문의 이름을 크게 높였다. 오미리의 도림강당은 그와 그의 아들들을 기려 세워졌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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