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문스캐너
본관 인구 4105,669명 · 2015 인구주택총조사

통천 김씨

通川 金氏

0

확인 독립유공자

0

수록 친일 기록

5,669

2015 인구

410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김교金較

신라 경순왕의 손자로 전하는 인물이다. 고려 광종 때 통주군(通州君)에 봉해졌다고 한다. 1701년 간행된 족보 초간본 신사보에 통천군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삼았다.

통천 김씨는 경순왕의 손자로 전하며 고려 광종 때 통주군에 봉해진 김교를 시조로 한다. 통주 김씨(通州 金氏) 또는 금양 김씨(金壤 金氏)라는 이칭으로도 불렸는데, 이는 본관지의 지명이 바뀌어 온 데서 비롯되었다. 지명 변천에 따라 1285년(충렬왕 11)까지는 금양 김씨로, 1413년(태종 13)까지는 통주 김씨로, 그 이후로는 통천 김씨로 관향을 표기하였다. 본관 통천(通川)은 오늘날 강원도 통천군 일대의 지명이다. 고려 중기 문인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 연보에는 그의 어머니가 금양 김씨이고 외조부 김중권(金仲權)이 당시의 큰 학자로 과거에 급제하여 울진현위를 지냈다고 기록되어 있다.

가문의 역사

1701년 간행된 족보 초간본 신사보에는 시조 김교 이후의 계대가 상당 부분 실전되어, 고려 말 광정대부 판도판서 문한학사에 오른 김원등(金遠登)을 중시조로 하여 계보를 잇고 있다. 김원등의 아들 김호(金浩)가 세 아들을 두면서 진산교도공파·군수공파·전직공파로 나뉘었다. 임진왜란 이전까지 고려 문과 1건, 조선 문과 6건, 생원진사시 10건 등의 기록이 남아 있으며, 김호·김권·김원·김빙·김여련 등이 대과에 급제하였다. 그러나 1589년 기축옥사로 형조좌랑 김빙이 역적으로 몰리고, 3년 뒤 임진왜란 때 김여련이 순절하며 완주 소양 일대에 세거하던 군수공파 일족이 의병으로 나가 전몰하면서 가세가 크게 기울었다. 세거지는 강원도 통천에서 전라도 완산과 충청도 서천 지방으로 옮겨 갔고, 전북 완주군 구이면에는 1580년 김진이 후학을 가르치기 위해 세운 남계정이 남아 있다. 2015년 인구는 5,669명이다.

독립유공자 0명 확인

이 가문에서 아직 확인된 독립유공자 정보가 없어요. 수록 기준은 국가보훈부 서훈자 중 본관이 공개 자료로 확인되는 인물입니다. 서훈자 명단에 있어도 본관 기록이 공개 자료에 없으면 목록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친일 행적 기록 0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공개 자료에서 본관이 확인된 친일 행적 기록이 수록되지 않았습니다.

가문의 주요 인물

조선

김빙

1580년(선조 13)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형조좌랑으로 1589년 기축옥사의 추국관을 맡았다가 백유함의 모함을 받아 역적으로 몰렸고, 이 일로 통천 김씨 가문이 큰 시련을 겪었다.

조선

김여련

1588년(선조 21) 식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임진왜란 때 선조를 호종하다 순절하였으며, 서암이라는 시호와 정려를 받았다.

조선

김진

호가 남계(南溪)인 유학자로 1552년 식년시 생원에 입격하였다. 1580년 합천교도를 마치고 낙향하여 제자들을 가르치기 위해 전북 완주군 구이면에 남계정을 세웠으며, 이 건물은 지방문화재로 남아 있다.

참고 자료

같은 씨의 다른 가문

다른 가문 찾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