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 김씨
忠州 金氏
3명
확인 독립유공자
0명
수록 친일 기록
1.1만
2015 인구
340위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김남길金南吉
고려에서 평장사와 문하시중, 태자대부를 지냈다고 전한다. 공민왕 때 충원군(忠原君)에 봉해졌는데 충원은 충주의 옛 이름으로, 이를 계기로 후손들이 충주를 본관으로 삼았다. 족보에는 신라 경순왕의 셋째 아들 영분공(永芬公) 김명종(金鳴鍾)의 16세손으로 적혀 있다.
시조 김남길(金南吉)은 고려에서 평장사와 문하시중, 태자대부를 지냈다고 전한다. 공민왕 때 충원군에 봉해졌는데 충원은 충주의 옛 이름으로, 이를 계기로 후손들이 충주를 관향으로 삼았다. 족보에 따르면 김남길은 신라 경순왕의 셋째 아들 영분공 김명종의 16세손이다. 본관 충주(忠州)는 475년 고구려가 국원성(國原城)을 두었던 곳으로, 신라가 소경을 설치한 뒤 경덕왕 때 중원경(中原京)이라 하였고 940년 충주로 이름이 바뀌었다. 983년 충주목으로 승격되었고 1395년 이곳에 충청도관찰사가 두어졌으며 1956년 충주시가 되었다.
가문의 역사
충주 김씨는 조선시대에 약 90명이 관직에 진출하였고 그 가운데 판서 3명과 봉군 2명, 공신 1명이 나왔다. 김맹연은 병조판서를, 김양수는 예조판서를, 김양한은 문과에 급제한 뒤 이조판서를 역임하여 가문의 대표적인 문신으로 꼽힌다. 김맹호는 전라감사를 지냈고, 김도민은 1466년 이조참의로 있으면서 임금에게 직간하다가 철산에 유배되었다. 무반에서는 김진성과 김송산이 어모장군에 올랐고 김세순이 1466년 무과에 급제하여 박천군수를 지냈으며, 후대에도 김열이 1717년, 김병원이 1851년, 김대윤이 1869년 정시문과에 급제하는 등 문과 급제자가 이어졌다. 후손들은 서울과 인천, 경기도 일대에 많이 살고 있다. 2015년 인구는 10,582명이다.
독립유공자 3명 확인
서훈자 명단 본관 확인 3명
국가보훈부 독립유공자 명단 중 본관이 공개 자료(한국역대인명정보, 위키백과)에서 확인되고 생몰년이 일치하는 인물입니다. 본관 기록이 없는 서훈자가 훨씬 많으므로 실제 이 가문의 독립유공자는 이보다 많을 수 있습니다.
친일 행적 기록 0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공개 자료에서 본관이 확인된 친일 행적 기록이 수록되지 않았습니다.
가문의 주요 인물
김맹연
조선에서 병조판서를 역임하였다.
김양한
문과에 급제하여 이조판서를 역임하였다.
김양수
조선에서 예조판서를 지냈다.
김도민
1466년 이조참의로 있으면서 임금에게 직간하다가 철산으로 유배되었다.
김맹호
조선에서 전라감사를 지냈다.
참고 자료
같은 김씨의 다른 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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