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 김씨
淸州 金氏
1명
확인 독립유공자
0명
수록 친일 기록
3.4만
2015 인구
194위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김보金甫
신라 경순왕 김부의 후예로 고려에서 대호군을 거쳐 상락백에 봉해진 인물이다. 벼슬에서 물러난 뒤 청주 구봉산 아래에 은거하였다. 김예(金藝)·김전(金篆)·김양(金蘘) 세 아들을 두었고 후손들이 그를 일세조로 삼았다.
청주 김씨는 신라 56대 경순왕 김부의 후손으로 청주를 본관으로 하면서도 시조를 달리하는 세 계통으로 이루어져 있다. 첫째는 경순왕의 여섯째 아들 김정(金錠)의 10세손 김보를 일세조로 삼는 계통으로, 김보가 청주 구봉산 아래에 은거한 데서 비롯되었다. 둘째는 김방경의 6세손 김하통(金夏通)을 시조로 삼는 계통인데, 그 아버지 김사의가 고려 말 벼슬을 하다가 조선이 서자 절의를 지켜 청주에 은거하였고 김하통이 함경도 함흥으로 옮겨 세거하였다. 셋째는 청주 토착 세력에서 나온 김사지(金四知)를 시조로 삼는 계통으로, 김사지가 1498년 무오사화 때 함경도 홍원으로 유배되어 그곳에 정착하였다. 본관 청주는 충청북도 청주시 일대이며, 세 계통 모두 이곳을 관향으로 쓴다.
가문의 역사
조선시대에 문과 급제자 8명과 무과 급제자 87명을 배출하였는데, 무과 급제자가 압도적으로 많은 점이 이 가문의 두드러진 특징이다. 김보 계통에서는 큰아들 김예가 함경도 북청에 들어가 그 후손이 그곳에서 세거하였고, 둘째 김전의 손자 김인은 의정부도승지를 거쳐 좌찬성에 이르렀다. 김사지는 문과에 급제해 좌랑과 전적을 거쳐 연산군 때 참의에 올랐으나 무오사화로 유배되었다. 고려 왕실에는 두 명의 왕비를, 조선 세종에게는 후궁 한 명을 들여 왕실과 인척을 맺기도 하였다. 집성촌은 전라남도 강진군 칠량면 현천리와 성전면 명산리를 비롯해 평안북도·평안남도·함경남도 여러 지역에 형성되었다. 2015년 인구는 33,681명이다.
독립유공자 1명 확인
서훈자 명단 본관 확인 1명
국가보훈부 독립유공자 명단 중 본관이 공개 자료(한국역대인명정보, 위키백과)에서 확인되고 생몰년이 일치하는 인물입니다. 본관 기록이 없는 서훈자가 훨씬 많으므로 실제 이 가문의 독립유공자는 이보다 많을 수 있습니다.
| 이름 | 생몰년 | 본적 | 운동계열 | 훈격 | 본관 근거 | 공적조서 |
|---|---|---|---|---|---|---|
| 김지옥金址玉 | 1914–1972 | 평안남도 안주 | 광복군 | 건국훈장 애국장(1990) | 역대인명정보 | 공훈록 ↗ |
친일 행적 기록 0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공개 자료에서 본관이 확인된 친일 행적 기록이 수록되지 않았습니다.
가문의 주요 인물
김인
김보의 둘째 아들 김전의 손자로 의정부도승지를 거쳐 좌찬성에 이르렀다.
김사지
언양군 김선의 15세손으로 문과에 급제해 좌랑과 전적을 거쳐 연산군 때 참의에 올랐으나 1498년 무오사화 때 함경도 홍원으로 유배되어 그곳에 정착하였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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