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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인구 2932.5만명 · 2015 인구주택총조사표기 변형 합산

진주 정씨

晉州 鄭氏

6

확인 독립유공자

1

수록 친일 기록

32.5만

2015 인구

29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정예鄭藝

고려 초 광록대부·문하시중 평장사를 지낸 인물로, 진주 정씨 여러 계통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시조이다. 진주 정씨는 시조를 달리하는 여덟 계통으로 나뉜다.

경상남도 진주시를 본관으로 하며, 진양(晉陽)은 진주의 옛 이름이어서 진양 정씨로도 표기한다. 진주는 본래 백제의 거열성이었다가 신라에 편입된 뒤 강주 등으로 불렸고, 고려 성종 때 전국 12목의 하나인 진주목이 되었다. 정예(鄭藝)·정자우(鄭子友)·정장(鄭莊)·정헌(鄭櫶) 등 시조를 달리하는 여덟 계통이 각각 세계를 이어와, 하나의 본관 아래 여러 갈래가 병존하는 것이 특징이다.

가문의 역사

고려 말 정이오는 예문관대제학에 올랐고, 그의 아들 정분은 조선 단종 때 우의정으로 계유정난에 맞서다 화를 입었다. 임진왜란 때는 정기룡이 육전에서 잇단 승리를 거둬 '바다에 이순신, 육지에 정기룡'이라는 말을 낳았고, 조선 중기의 대학자 정경세는 예학의 대가로 이름이 높았다. 진주 정씨와 진양 정씨를 합치면 2015년 기준 32만여 명으로 정씨 가운데 손꼽히는 규모다.

독립유공자 6명 확인

정세권鄭世權

건국훈장 애족장

일제강점기 '건축왕'으로 불린 부동산 개발업자로, 북촌·익선동 등 경성 전역에 도시한옥 단지를 지어 일본인의 도심 진출을 막았다. 조선물산장려회와 조선어학회에 거액을 후원한 공로로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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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형鄭一亨

건국훈장 애국장

일제강점기 사회사업가·교육자로 활동하며 항일운동에 참여한 공로로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광복 후 제2공화국 외무부 장관과 8선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여성 변호사 이태영의 남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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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훈자 명단 본관 확인 5

국가보훈부 독립유공자 명단 중 본관이 공개 자료(한국역대인명정보, 위키백과)에서 확인되고 생몰년이 일치하는 인물입니다. 본관 기록이 없는 서훈자가 훨씬 많으므로 실제 이 가문의 독립유공자는 이보다 많을 수 있습니다.

이름생몰년본적운동계열훈격본관 근거공적조서
정두흠鄭斗欽1832–1910전라남도 장흥의열투쟁건국훈장 애국장(2022)역대인명정보공훈록 ↗
정시해鄭時海1874–1906전라북도 고창의병건국훈장 애국장(1990)역대인명정보공훈록 ↗
정일형鄭一亨1904–1982서울국내항일건국훈장 애국장(1990)역대인명정보공훈록 ↗
정몽석鄭夢錫1896–1961경상남도 하동3.1운동건국훈장 애족장(1993)역대인명정보공훈록 ↗
정규영鄭奎榮1860–1921경상남도 하동3.1운동건국포장(2013)역대인명정보공훈록 ↗

친일 행적 기록 1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정재환鄭在煥

관료(사법)

친일인명사전(민족문제연구소) 등재

일제강점기에 검사로 재직한 이력이 문제가 되어 친일인명사전 사법 부문에 수록되었다. 광복 후에는 법무부 차관을 지내고 동아대학교를 설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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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의 주요 인물

고려

정이오

고려 말~조선 초의 문신으로 예문관대제학을 지낸 문장가이다.

조선

정분

단종 때 우의정으로 계유정난에 맞서다 사사된 충신이다.

조선

정경세

유성룡의 문인으로 조선 예학을 집대성한 학자이자 이조판서를 지낸 문신이다.

근현대

정병욱

국문학자로, 윤동주의 유고 시집 원고를 지켜내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세상에 나오게 한 인물이다.

근현대

정원식

교육학자로 문교부 장관을 거쳐 국무총리를 지냈다.

근현대

정홍원

법조인 출신으로 제42대 국무총리를 지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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