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김씨
晉州 金氏
2명
확인 독립유공자
0명
수록 친일 기록
2.2만
2015 인구
240위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김추金錘
신라 경순왕의 여덟째 아들로, 고려에서 삼한찬문공신으로 금자광록대부 문하시중 참지부사를 지내고 진성군(晉城君)에 봉해졌다. 그 봉호에 따라 후손들이 관향을 진주로 삼았다. 진주 김씨에는 이와 별개로 김유신의 둘째 아들 김원술(金元述)을 시조로 하는 가락계 계통이 따로 있다.
진주 김씨는 동성동본이면서도 연원을 달리하는 두 계통으로 나뉜다. 신라계는 경순왕의 여덟째 아들 김추를 시조로 하는데, 그가 고려에서 삼한찬문공신으로 금자광록대부 문하시중 참지부사를 지내고 진성군에 봉해졌으므로 후손들이 관향을 진주로 삼았다. 가락계는 김유신의 둘째 아들 김원술을 시조로 한다. 김원술은 당나라가 신라를 침공했을 때 출전하였다가 담릉의 만류로 후퇴하였는데, 왕명을 어기고 가훈을 더럽혔다는 이유로 부모에게 용서받지 못하여 태백산에 들어갔다고 전한다. 뒤에 진주에서 일생을 마쳤으므로 그 후손들도 본관을 진주로 하게 되었다. 본관 진주는 오늘날 경상남도 진주시이다.
가문의 역사
신라계에서는 집현전 태학사를 역임하고 진양부원군(晋陽府院君)에 봉해진 김무진이 크게 이름을 떨쳤고, 좌찬성을 지낸 김태와 호조참의 김중국, 호조참판 김귀민 등이 뒤를 이었다. 가락계에서는 정묘호란 때 안주의 방어전에서 분전하다 장렬하게 전사한 김양언이 진흥군에 추봉되었으며, 동지중추부사 김장련과 감찰 김천우 등이 관직에 올랐다. 집성촌은 경기도 화성, 충청남도 서천, 전라남도 장성과 화순, 전북 부안, 평안남도와 평안북도, 함경남도 일원 등 열 곳 남짓에 흩어져 있다. 2015년 인구는 22,308명이다.
독립유공자 2명 확인
친일 행적 기록 0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공개 자료에서 본관이 확인된 친일 행적 기록이 수록되지 않았습니다.
가문의 주요 인물
김원술
김유신의 둘째 아들로, 당나라와의 싸움에서 물러난 일로 부모에게 용서받지 못하고 태백산에 들어갔다가 진주에서 일생을 마쳤다고 전한다. 진주 김씨 가락계의 시조로 받들어진다.
김무진
집현전 태학사를 역임하고 진양부원군에 봉해져 크게 명성을 떨친 인물이다.
김양언
정묘호란 때 안주의 방어전에서 분전하다 장렬하게 전사하였고, 그 공으로 진흥군에 추봉되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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