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 임씨(任)
長興 任氏
한글 표기가 같은 다른 가문이 있어요: 장흥 임씨(林)
1명
확인 독립유공자
0명
수록 친일 기록
3.8만
2015 인구
178위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임호任顥
생몰년은 알려져 있지 않다. 고려 예종 때 평장사에 오른 임의(任懿)의 아버지로 장흥 임씨의 시조로 받들어진다. 그 가계가 고려 중기 최고 문벌 가운데 하나로 성장하는 출발점이 되었다.
장흥 임씨는 임호를 시조로 삼는 임(任)씨 가문으로, 아들 임의가 고려 예종 때 재상에 오르면서 문벌로 자리 잡았다. 임의는 1041년에 태어나 1117년에 죽었으며 중서문하평장사와 판상서형부사를 거쳐 상주국에 이르렀고 좌리공신으로 정안군에 봉해졌으며 시호는 정경이다. 시조의 유래를 두고 중국 송나라 소흥부에서 건너왔다는 설과 한반도 토착 성씨라는 설이 함께 전한다. 본관 장흥은 전라남도 장흥군 일대로, 고려시대 장흥부는 지금의 보성과 강진, 고흥 일부까지 아우르는 큰 고을이었다. 뒤에 관산 임씨가 이 가문에서 갈라져 나왔다.
가문의 역사
고려 중기에는 임원후의 딸이 인종의 비인 공예왕후가 되어 왕실과 인척을 맺었고, 그 아들 임극충이 문과에 급제해 사공과 중서시랑평장사를 지내는 등 최고 문벌의 지위를 누렸다. 조선시대에는 문과 급제자 8명과 무과 급제자 19명을 배출하였다. 임진왜란 때 임계영은 전라좌도의병장이 되어 형 임백영과 함께 의병을 이끌고 공을 세웠다. 조선에 들어와 후손들이 해남과 순천, 진도 등지로 옮겨 갔고 집성촌은 전라남도 보성군과 순천시, 장흥군, 해남군, 화순군 일대에 형성되었다. 근현대에는 합동참모의장과 국방부 장관을 지낸 임충식이 나왔다. 2015년 인구는 37,584명이다.
독립유공자 1명 확인
서훈자 명단 본관 확인 1명
국가보훈부 독립유공자 명단 중 본관이 공개 자료(한국역대인명정보, 위키백과)에서 확인되고 생몰년이 일치하는 인물입니다. 본관 기록이 없는 서훈자가 훨씬 많으므로 실제 이 가문의 독립유공자는 이보다 많을 수 있습니다.
| 이름 | 생몰년 | 본적 | 운동계열 | 훈격 | 본관 근거 | 공적조서 |
|---|---|---|---|---|---|---|
| 임정현任淨鉉 | 1874–1909 | 전라남도 보성 | 의병 | 건국훈장 애국장(1990) | 역대인명정보 | 공훈록 ↗ |
친일 행적 기록 0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공개 자료에서 본관이 확인된 친일 행적 기록이 수록되지 않았습니다.
가문의 주요 인물
임의
1041년에 태어나 1117년에 죽었다. 중서문하평장사와 판상서형부사를 거쳐 상주국에 이르렀고 좌리공신으로 정안군에 봉해졌으며 시호는 정경이다.
공예왕후
임원후의 딸로 고려 인종의 비가 되었다.
임극충
임원후의 아들로 문과에 급제한 뒤 사공과 중서시랑평장사를 지냈다.
임계영
임진왜란 때 전라좌도의병장이 되어 형 임백영과 함께 의병을 이끌고 공을 세웠다.
임충식
1922년에 태어났다. 육군사관학교 1기 출신으로 18연대장을 거쳐 합동참모의장과 국방부 장관을 지냈다.
참고 자료
같은 임씨의 다른 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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