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문스캐너
본관 인구 1177.6만명 · 2015 인구주택총조사표기 변형 합산

부안 임씨

扶安 林氏

0

확인 독립유공자

0

수록 친일 기록

7.6만

2015 인구

117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임계미林季美

고려 때 금자광록대부로 평장사를 지낸 인물이다. 고려 현종 때 문과에 급제했고 평원부원군에 봉해졌다고 전한다. 보안현(保安縣) 곧 지금의 전라북도 부안군에 자리를 잡으면서 후손들이 부안을 본관으로 삼았다.

시조 임계미가 보안현에 정착하면서 후손들이 부안을 관향으로 삼았다. 본관 부안은 지금의 전북특별자치도 부안군이다. 이 가문은 고려 후기에 명문거족으로 성장했고, 조선 초에 임난수의 아들들을 파조로 하여 전서공파와 양양부사공파·사직공파·위의공파로 갈렸다. 성씨 한자 림(林)을 두음법칙에 따라 임으로 적는 것이 표준이나 부안 림씨라는 표기도 함께 쓰인다.

가문의 역사

가문을 대표하는 인물은 임난수(林蘭秀, 1342~1407)다. 부안에서 임숙(林淑)의 아들로 태어나 1374년(공민왕 23) 서른두 살에 최영을 따라 탐라 정벌에 참전했는데, 오른팔이 잘리자 잘린 팔을 화살통에 꽂고 계속 싸웠다고 전한다. 흥복도감 녹사와 낭장·호군·우윤을 거쳐 공조전서에 올랐으나 조선이 서자 한 하늘에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며 벼슬을 버리고 공주 삼기촌 곧 지금의 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 세종리에 은거했고, 묘소는 세종시 연동면 용호리에 있다. 그 뒤 600년 가까이 후손들이 세종리에 집성촌을 이루어 살아왔으며 금남면 남곡리와 도담동, 조치원읍 일대에도 세거해왔다. 조선시대에 문과 급제자 6명을 배출했고 임원배(1806년생)는 1827년 문과에 장원급제했다. 2015년 인구는 76,159명이다.

독립유공자 0명 확인

이 가문에서 아직 확인된 독립유공자 정보가 없어요. 수록 기준은 국가보훈부 서훈자 중 본관이 공개 자료로 확인되는 인물입니다. 서훈자 명단에 있어도 본관 기록이 공개 자료에 없으면 목록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친일 행적 기록 0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공개 자료에서 본관이 확인된 친일 행적 기록이 수록되지 않았습니다.

가문의 주요 인물

고려

임난수

1374년 최영을 따라 탐라 정벌에 참전해 공을 세우고 공조전서에 오른 무신이다. 조선이 건국되자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며 벼슬을 버리고 공주 삼기촌에 은거했으며, 세종 지역 부안 임씨의 입향조다.

조선

임목

1371년에 태어나 1448년에 세상을 떠났으며 양양도호부사를 지냈다. 양양부사공파의 파조다.

조선

임원배

1806년에 태어나 1827년 문과에 장원급제한 문신이다.

조선

숙빈 임씨

사도세자의 후궁이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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