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진 임씨
恩津 林氏
0명
확인 독립유공자
0명
수록 친일 기록
1.1만
2015 인구
329위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임자미林自美
고려 숙종 때의 인물로 시진군(市津君)에 봉해졌다고 전한다. 본래 다른 본관의 임씨였다가 시진군에 봉해진 뒤 은진을 관향으로 삼아 분적하였다고 하는데, 그 본래 본관을 두고 진천이라는 기록과 평택이라는 기록이 함께 전한다. 이후 계보가 실전되어 후손들은 고려 말 문과에 급제한 임성근(林成槿)을 기세조로 삼아 세계를 잇고 있다.
시조 임자미(林自美)는 고려 숙종 때 인물로 시진군에 봉해지면서 은진을 본관으로 삼았다고 전한다. 시진은 지금의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 해당하는 옛 고을 이름이다. 시조 이후 계보가 끊어져 후손들은 고려 말 문과에 급제하고 조청랑(朝請郞)과 태상박사(太常博士)를 지낸 임성근(林成槿)을 기세조로 삼아 대를 이어 왔다. 본관 은진은 신라 경덕왕 때 덕은(德恩)으로 불리다가 1419년 은진으로 이름이 바뀐 고을로, 현재 충청남도 논산시 은진면 일대이다. 후대에 은진 임씨에서 울진 임씨(蔚珍林氏)가 갈라져 나왔다.
가문의 역사
기세조 임성근이 고려 말 문과에 급제하여 조청랑과 태상박사를 지내면서 가문의 계보가 다시 이어졌다. 조선시대에 은진 임씨는 무과 급제자 1명과 생원·진사시 입격자 11명을 배출하였다. 임정(林挺)은 봉선대부에 올라 낙안 군사를 지냈고, 임식(林湜)은 무과에 급제하였다. 임훈(林薰)은 생원시에 입격한 뒤 광주 목사를 지냈다. 2015년 인구는 11,451명이다.
독립유공자 0명 확인
이 가문에서 아직 확인된 독립유공자 정보가 없어요. 수록 기준은 국가보훈부 서훈자 중 본관이 공개 자료로 확인되는 인물입니다. 서훈자 명단에 있어도 본관 기록이 공개 자료에 없으면 목록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친일 행적 기록 0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공개 자료에서 본관이 확인된 친일 행적 기록이 수록되지 않았습니다.
가문의 주요 인물
임성근
고려 말에 문과에 급제하여 조청랑과 태상박사를 지냈다. 시조 이후 계보가 실전되었기 때문에 후손들이 그를 기세조로 삼아 세계를 잇고 있다.
임정
봉선대부에 올라 낙안 군사를 지냈다.
임훈
생원시에 입격한 뒤 광주 목사를 지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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