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 임씨
平澤 林氏
4명
확인 독립유공자
2명
수록 친일 기록
22.6만
2015 인구
42위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임팔급林八及
당나라에서 신라로 건너온 여덟 학사 가운데 한 사람으로 전해지며, 평택에 정착해 평택 임씨의 시조가 되었다고 한다.
시조는 당나라에서 신라로 건너와 평택에 정착했다고 전해지는 임팔급이다. 본관인 평택은 경기도 평택시로, 별호인 평성(平城)에서 본관 이름이 비롯되었다는 설도 있다. 다만 상계(上系)가 실전되어 고려 말 인물을 기세조로 삼는 두 계통으로 나뉜다.
가문의 역사
고려 말 평성부원군 임언수(林彦脩)를 기세조로 하는 충정공계와, 세자전객령 겸 연희궁부사를 지낸 임세춘(林世春)을 기세조로 하는 전객령계의 두 계통이 있다. 충정공계에서는 임언수의 아들 임견미가 문하시중까지 올랐고, 전객령계에서는 태종 때 형조판서를 지낸 임정(林整)이 이름났다. 조선시대에 문과 급제자 20명을 배출했으며, 병자호란 때 명나라와 손잡고 청에 맞선 명장 임경업이 이 가문 출신으로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독립유공자 4명 확인
임병찬林炳瓚
건국훈장 독립장1906년 최익현과 함께 정읍 무성서원에서 의병을 일으켰고, 국권 상실 후 고종의 밀지를 받아 대한독립의군부를 조직했다. 거문도로 유배되어 단식 끝에 1916년 순국했으며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출처 확인 ↗임예환林禮煥
건국훈장 대통령장동학농민운동에 참가한 천도교 지도자로 1919년 3·1운동 때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독립선언서에 서명했다. 징역 2년을 살고 출옥한 뒤에도 항일활동을 이어갔으며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출처 확인 ↗임학규林學規
건국훈장 애족장1919년 4월 29일 충청남도 서천 장터에서 태극기를 흔들며 만세운동을 주도하다 체포되어 징역 1년형을 받았다. 1983년 대통령표창,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출처 확인 ↗서훈자 명단 본관 확인 3명
국가보훈부 독립유공자 명단 중 본관이 공개 자료(한국역대인명정보, 위키백과)에서 확인되고 생몰년이 일치하는 인물입니다. 본관 기록이 없는 서훈자가 훨씬 많으므로 실제 이 가문의 독립유공자는 이보다 많을 수 있습니다.
친일 행적 기록 2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임병식林炳湜
경찰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정부 1,006명) 등재
1923년 경부보시험에 합격해 평안북도 일대에서 고등경찰·사법주임으로 근무했고, 1939년 중일전쟁에 협력한 공로로 일본 정부로부터 훈8등 서보장을 받았다. 2009년 정부의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과 친일인명사전에 올랐다.
출처 확인 ↗임선규林仙圭
문화·연극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정부 1,006명) 등재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로 이름난 극작가로, 조선총독부가 주최한 연극경연대회에 작품을 출품하고 조선연극문화협회 이사를 지냈다. 2009년 정부의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과 친일인명사전 연극/영화 부문에 올랐다.
출처 확인 ↗가문의 주요 인물
임언수
고려 말 평성부원군에 봉해진 문신으로 충정공계의 기세조이다.
임견미
임언수의 아들로 고려 우왕 때 문하시중에 오른 권신이다.
임정
태종 때 형조판서를 지낸 문신으로 전객령계의 대표 인물이다.
임경업
이괄의 난 평정과 대청 항전으로 이름난 명장으로 시호는 충민(忠愍)이다.
임수정
〈장화, 홍련〉·〈싸이보그지만 괜찮아〉 등에 출연한 배우이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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