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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인구 3131.3만명 · 2015 인구주택총조사

원주 김씨

原州 金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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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인 독립유공자

0

수록 친일 기록

1.3만

2015 인구

313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김거공金巨公

초명은 김자표(金子彪)이며 경순왕의 후예로 전한다. 고려에서 서리와 내시를 거쳐 1142년 금나라 동경에 다녀왔고, 의종 때 이부상서·지추밀원사·판삼사사를 역임한 뒤 지문하성사에 올랐다. 원성(原城)의 식읍을 받고 원성백에 봉해졌다.

시조 김거공이 원성백에 봉해지면서 후손들이 원주를 관향으로 삼았다. 원주는 본래 고구려의 평원군 또는 치악성이었고 신라 문무왕 17년인 677년에 북원소경으로 고쳐졌다. 757년에는 북원경이 되었다가 고려 태조 23년인 940년에 원주로 이름이 바뀌었으며 지금은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이다. 후손은 김득우를 파조로 하는 문정공파와 김연지를 파조로 하는 대경공파로 크게 나뉘고, 문정공파 아래에 병판공파·감찰공파·찬성공파 등이 있다.

가문의 역사

조선 중기의 김응남이 이 가문을 대표한다. 김응남은 1546년에 태어나 1567년 생원시를 거쳐 1568년 증광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고,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 왕이 피난길에 오르자 유성룡의 천거로 병조판서 겸 부체찰사가 되었으며 1595년 좌의정에 올라 영의정 유성룡과 함께 전란 후의 혼란한 정국을 안정시켰다. 1598년에 세상을 떠난 뒤 1604년 호성공신 2등으로 추봉되고 원성부원군에 봉해졌으며 시호는 충정이다. 김덕원은 1634년에 태어나 1662년 정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해 사헌부지평·사간원정언·병조참판·예조판서를 거쳐 우의정에 이르렀으나 갑술환국으로 제주도에 유배되었고 1704년에 세상을 떠난 뒤 1711년 신원되었다. 집성촌은 경기도 양천, 충청남도 금산군과 보령군, 강원도 춘천시를 비롯해 전라도와 황해도 등 전국 여러 곳에 분포한다. 2015년 인구는 13,215명이다.

독립유공자 0명 확인

이 가문에서 아직 확인된 독립유공자 정보가 없어요. 수록 기준은 국가보훈부 서훈자 중 본관이 공개 자료로 확인되는 인물입니다. 서훈자 명단에 있어도 본관 기록이 공개 자료에 없으면 목록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친일 행적 기록 0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공개 자료에서 본관이 확인된 친일 행적 기록이 수록되지 않았습니다.

가문의 주요 인물

조선

김응남

1546년에 태어나 1598년에 세상을 떠난 문신으로 자는 중숙, 호는 두암이다. 1568년 증광 문과에 급제하고 임진왜란 때 유성룡의 천거로 병조판서 겸 부체찰사가 되었으며 1595년 좌의정에 올라 전란 후의 정국을 안정시켰다. 1604년 호성공신 2등으로 추봉되어 원성부원군에 봉해졌고 시호는 충정이다.

조선

김덕원

1634년에 태어나 1704년에 세상을 떠난 문신이다. 1662년 정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해 사헌부지평·사간원정언·병조참판·예조판서를 지내고 우의정에 올랐으나 갑술환국으로 제주도에 유배되었고 1711년 신원되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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