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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인구 1644.3만명 · 2015 인구주택총조사

울산 김씨

蔚山 金氏

2

확인 독립유공자

1

수록 친일 기록

4.3만

2015 인구

164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김덕지金德智

신라 마지막 임금 경순왕 김부(金傅)의 왕자이다. 학성 일대를 식읍으로 받고 학성부원군에 봉해졌으며, 후손들이 그 관향을 따라 울산을 본관으로 삼았다.

울산 김씨는 신라 경순왕 김부(金傅)의 왕자 김덕지(金德智)를 시조로 한다. 김덕지는 학성 일대를 식읍으로 받고 학성부원군에 봉해졌으며, 후손들이 이곳을 관향으로 삼았다. 본관인 울산은 신라 때 굴아화촌이었고, 901년 효공왕 때 한 쌍의 학이 금으로 된 신상을 물고 울었다 하여 신학성이라 불렸다고 전한다. 고려 태조 때 흥려부로 승격되었으며 오늘날의 울산광역시이다.

가문의 역사

조선시대에 문과 급제자 12명, 무과 급제자 4명, 음관 13명, 사마시 급제자 45명을 배출하였다. 고려 때에는 삼중대광 광록대부에 올라 학성군에 봉해지고 시호를 문숙이라 한 김환이 나왔고, 조선 초에는 개국원종공신에 녹훈되어 흥려군에 봉해진 김온이 있었다. 조선 중기의 하서 김인후는 성리학의 대표적 이론가로 문묘에 종사되었으며, 임진왜란 때에는 김경수가 장성 남문에서 창의하여 7년 동안 세 차례 기병하며 항전하였다. 근현대에는 동아일보와 보성전문학교를 세운 김성수, 초대 대법원장 김병로, 삼양사를 창업한 김연수, 고려대 총장과 국무총리를 지낸 김상협 등이 나왔다. 집성촌은 전라남도 장성군 황룡면·서삼면과 전라북도 고창군·순창군, 울산광역시 울주군, 함경남도 문천군 등에 분포한다. 2015년 인구는 42,746명이다.

독립유공자 2명 확인

김병로金炳魯

건국훈장 독립장

1887년에 나서 1964년에 죽은 법조인이다. 105인 사건을 비롯해 100건이 넘는 독립운동 관련 사건을 무료로 변론하고 1929년 신간회 중앙집행위원 겸 회계장을 맡았으며, 광복 후 초대 대법원장과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특별재판부 재판장을 지냈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수여되었다.

출처 확인 ↗

서훈자 명단 본관 확인 2

국가보훈부 독립유공자 명단 중 본관이 공개 자료(한국역대인명정보, 위키백과)에서 확인되고 생몰년이 일치하는 인물입니다. 본관 기록이 없는 서훈자가 훨씬 많으므로 실제 이 가문의 독립유공자는 이보다 많을 수 있습니다.

이름생몰년본적운동계열훈격본관 근거공적조서
김병로金炳魯1887–1964서울문화운동건국훈장 독립장(1963)역대인명정보공훈록 ↗
김익중金翼中1851–1907전라남도 장성의병건국훈장 애국장(1990)역대인명정보공훈록 ↗

친일 행적 기록 1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김성수金性洙

언론·교육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정부 1,006명) 등재

1891년에 나서 1955년에 죽은 언론인이자 교육가, 정치인으로 동아일보를 창업하고 보성전문학교를 인수해 운영하였으며 대한민국 제2대 부통령을 지냈다. 1937년 이후 시국강연과 국방헌금, 징병제를 찬양하는 논설 등의 행적으로 민족문제연구소가 펴낸 친일인명사전과 대한민국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에 수록되었고, 친일반민족행위 결정 취소 소송이 대법원에서 최종 기각되어 결정이 확정되었고, 2018년 독립유공자 서훈이 취소되었다.

출처 확인 ↗

가문의 주요 인물

조선

김온

조선 개국에 공을 세워 개국원종공신에 녹훈되고 흥려군에 봉해졌다.

조선

김인후

문과에 급제한 문신이자 학자로 호는 하서(河西)이다. 성리학의 대표적 이론가로 꼽히며 문묘에 종사되었다.

조선

김경수

임진왜란 때 장성 남문에서 의병을 일으켜 7년 동안 세 차례 기병하며 항전하였다.

근현대

김상협

고려대학교 총장과 국무총리를 지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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