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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인구 3081.4만명 · 2015 인구주택총조사

선산 임씨

善山 林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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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인 독립유공자

0

수록 친일 기록

1.4만

2015 인구

308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임양저林良貯

신라 경순왕의 손서(孫壻)로 중랑장을 지낸 인물이다. 경순왕이 고려에 귀순하려 하자 그 부당함을 극구 간언하다가 선산으로 유배되어 그곳에서 생애를 마쳤다고 전한다. 후손들은 그를 관향을 얻은 조상, 곧 득관조로 삼는다.

임씨의 도시조는 당나라 8학사의 한 사람으로 신라에 건너왔다는 임팔급(林八及)으로 전한다. 그 후손인 임양저가 경순왕의 고려 귀순에 반대하다 선산으로 유배되어 정착하면서 후손들이 선산을 관향으로 삼게 되었다. 선산은 낙동강 중류의 옛 고을로 지금의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일대에 해당한다. 고려 말 공민왕 때 태어나 조선 태조 때 이조좌랑을 지낸 임만(林蔓)을 중시조로 하여 세계를 이어왔다.

가문의 역사

조선 중기에 임우형·임억령·임백령·임천령·임구령 등이 잇달아 현달하면서 명문으로 발전하였다. 임억령은 1496년에 태어나 1516년 진사가 되고 1525년 식년문과에 급제해 홍문관교리·사간·동부승지·강원도관찰사·담양부사를 지냈다. 을사사화 때 동생 임백령이 소윤 일파에 가담해 대윤의 선비들을 몰아내자 자책하여 벼슬을 버렸고, 뒤에 임백령이 원종공신 녹권을 보내오자 분개하여 이를 불태우고 해남에 은거하였으며 문집 『석천집』을 남겼다. 구미 고아읍 원호리는 본래 선산 임씨의 집성촌이었다고 전한다. 2015년 인구는 13,726명이다.

독립유공자 0명 확인

이 가문에서 아직 확인된 독립유공자 정보가 없어요. 수록 기준은 국가보훈부 서훈자 중 본관이 공개 자료로 확인되는 인물입니다. 서훈자 명단에 있어도 본관 기록이 공개 자료에 없으면 목록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친일 행적 기록 0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공개 자료에서 본관이 확인된 친일 행적 기록이 수록되지 않았습니다.

가문의 주요 인물

고려

임만

공민왕 때 태어나 조선 태조 때 이조좌랑을 지낸 인물로 선산 임씨의 중시조이다.

조선

임억령

1496년에 태어나 1568년에 세상을 떠난 문신이다. 자는 대수, 호는 석천이며 1525년 식년문과에 급제해 강원도관찰사와 담양부사 등을 지냈다. 을사사화 때 벼슬을 버리고 해남에 은거하였고 시문에 뛰어나 당대의 현인들에게 존경을 받았으며 『석천집』을 남겼다.

조선

임백령

임억령의 동생으로 을사사화 때 소윤 일파에 가담해 원종공신 녹권을 받은 문신이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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