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안 김씨
扶安 金氏
0명
확인 독립유공자
0명
수록 친일 기록
6.9만
2015 인구
122위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김일金鎰
신라 마지막 임금 경순왕 김부의 큰아들인 태자다. 935년 아버지가 고려에 나라를 넘기려 하자 이에 반대하고 개골산에 들어가 수도하며 일생을 마쳤다고 전한다. 부안 김씨는 김알지(金閼智)를 원시조로, 김일을 시조로 삼는다.
부안 김씨는 서기 65년 금궤에서 나왔다는 김알지(金閼智)를 원시조로 하고, 신라 경순왕의 큰아들 김일(金鎰)을 시조로 삼는다. 고려 선종 때 문과에 급제해 이부상서를 지낸 김경수(金景修)가 부안 지역에 자리를 잡았고, 그 아들 김춘(金春)이 부령부원군(扶寧府院君)에 봉해지면서 후손들이 부령(扶寧)을 관향으로 삼았다. 1416년(태종 16) 부령현이 보안현과 합쳐져 부안현이 되면서 이후 부안 김씨로 불리게 되었으며, 지금도 부령 김씨라는 이름이 함께 쓰인다. 본관 부안은 전북특별자치도 부안군이다. 후손은 소윤공파·군사공파·소감공파·낭장공파 등 13개 대파와 53개 소파로 나뉜다.
가문의 역사
조선시대에 생원·진사 108명, 문과 급제자 28명, 무과 급제자 55명을 배출하였고, 공신에 녹훈된 인물이 30명, 서원에 배향된 인물이 23명에 이른다. 고려 후기의 김구(金坵, 1211~1278)는 12세에 진사, 22세에 문과에 급제하고 평장사에 올라 외교를 맡아 국난 극복에 힘썼으며, 호는 지포(止浦), 시호는 문정(文貞)이고 문집 『지포집』 6권이 전한다. 연산군·중종 대의 문신 김석필(金錫弼)은 중종반정에 협찬한 공으로 원종공신 1등에 책록되었으며, 1507년 그에게 내려진 공신녹권을 비롯한 부안김씨 종중 고문서 일괄 6종 80점은 1986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선조·광해군 대에는 금산군수를 지낸 김홍원(金弘遠)이 보안면 우동리 일원에 터를 마련해 뒷날 이곳이 대표적인 집성촌이 되었다. 1584년에 간행된 족보 『만력갑신보』는 우리나라 초기 족보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집성촌은 부안읍 옹정·내요리·모산리, 동진면, 행안면, 주산면, 보안면 우동리 등 부안군 일대와 정읍·남원·장수, 전라남도 곡성 등지에 분포한다. 2015년 인구는 69,157명이다.
독립유공자 0명 확인
이 가문에서 아직 확인된 독립유공자 정보가 없어요. 수록 기준은 국가보훈부 서훈자 중 본관이 공개 자료로 확인되는 인물입니다. 서훈자 명단에 있어도 본관 기록이 공개 자료에 없으면 목록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친일 행적 기록 0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공개 자료에서 본관이 확인된 친일 행적 기록이 수록되지 않았습니다.
가문의 주요 인물
김구
12세에 진사, 22세에 문과에 급제하고 평장사에 오른 문신으로, 외교에 능해 국난 극복에 공을 세웠으며 호는 지포(止浦),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김석필
연산군·중종 대의 문신으로 중종반정에 협찬한 공으로 원종공신 1등에 책록되었으며, 그에게 발급된 문서들이 보물로 지정된 부안김씨 종중 고문서에 포함되어 있다.
김홍원
선조·광해군 대에 금산군수를 지낸 문신으로, 보안면 우동리 일원에 터를 마련해 후손들의 세거 기반을 닦았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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