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강 김씨
道康 金氏
2명
확인 독립유공자
0명
수록 친일 기록
3.1만
2015 인구
204위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김희조金希祖
1124년에 태어나 1199년에 죽었으며 본명은 김공(金恭), 호는 강성(康城), 시호는 문효(文孝)라 전한다. 김알지의 34대손이자 신라 경순왕의 7대손으로, 고려 명종 때 병부상서를 거쳐 문하시중을 역임하였다. 1178년 장군 경대승과 함께 무신정권의 지배자 정중부를 제거한 공으로 도성부원군(道城府院君)과 도강백(道康伯)에 봉해지고 도강현을 식읍으로 받았다.
도강 김씨는 고려 명종 때 문하시중을 지낸 김희조를 시조로 한다. 그는 1178년 경대승과 함께 무신정권의 실권자 정중부를 제거한 공으로 도강백에 봉해지고 도강현을 식읍으로 받았으며, 후손들이 이를 따라 도강을 본관으로 삼았다. 도강(道康)은 전라남도 강진군 일원의 옛 지명으로, 940년(고려 태조 23) 도강현으로 고쳐졌고 1417년(태종 17) 도강현과 탐진현을 합쳐 강진현으로 삼았다. 그래서 오늘날의 본관지는 전라남도 강진군 일대에 해당한다.
가문의 역사
과거 급제자는 고려 문과 2명, 조선 문과 12명과 무과 14명을 냈고 생원 17명, 진사 11명이 올랐다. 김회련은 1392년 배극렴·김사형·정도전 등과 함께 이성계를 도와 조선 개국에 공을 세워 개국원종일등공신에 책록되었다. 임진왜란 때 김후진은 수백 섬의 곡식을 모아 행재소에 바치고 의병장 고경명과 민여운의 의병소에도 군량을 보냈다. 조선 말에는 전봉준·손화중과 함께 동학농민군 3대 지도자로 꼽히는 김개남이 나와 가문의 이름이 널리 알려졌다. 집성촌은 전라남도 강진군·영광군·진도군과 전라북도 정읍시 일원에 분포한다. 2015년 인구는 31,496명이다.
독립유공자 2명 확인
김영상
건국훈장 애국장1836년에 태어나 1911년에 죽은 우국지사이다. 1906년 병오창의 때 선봉이 되어 활동하였고, 국권을 빼앗긴 뒤 독립을 역설하다 일본 천황이 내린 은사금 사령서를 찢어 버린 일로 체포되었다. 옥중에서 아흐레 동안 단식한 끝에 1911년 5월 9일 일흔여섯의 나이로 순절하였으며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출처 확인 ↗친일 행적 기록 0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공개 자료에서 본관이 확인된 친일 행적 기록이 수록되지 않았습니다.
가문의 주요 인물
김회련
호는 충민(忠敏)이다. 1392년 배극렴·김사형·정도전 등과 함께 이성계를 도와 조선 개국에 공을 세워 개국원종일등공신에 책록되었다.
김후진
임진왜란 때 의병 활동에 나서 수백 섬의 곡식을 모아 행재소에 바쳤고, 의병장 고경명과 민여운의 의병소에도 군량을 보냈다.
김개남
1853년에 태어나 1894년에 죽은 동학농민운동의 지도자로, 전봉준·손화중과 함께 동학농민군 3대 지도자의 한 사람으로 꼽힌다. 전주화약 뒤 남원에 대도소를 설치하여 무주·진안·용담·장수·순천 등지를 호령하였으며 1894년 12월 전주에서 처형되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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