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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인구 4145,400명 · 2015 인구주택총조사

당악 김씨

唐岳 金氏

1

확인 독립유공자

0

수록 친일 기록

5,400

2015 인구

414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김낙金樂

신라 문성왕의 5세손이며 대아찬 김무력의 첫째 아들로 전한다. 왕건을 도와 후삼국을 통일하고 고려 개국에 공을 세워 개국통합삼한일등공신에 책록되고 당악군(唐岳君)에 봉해져 식읍 3천 호를 받았다. 927년(태조 10) 대량성을 함락시켰고, 같은 해 10월 팔공산 동수 전투에서 견훤의 군대에 왕건이 포위되자 신숭겸과 함께 왕을 숨기고 왕의 수레를 대신 타고 싸우다 전사하였다. 뒤에 익대효절광위갈충위사전공신(翊戴效節匡衛竭忠衛社戰功臣)에 추봉되었고, 그의 명복을 빌기 위해 지묘사가 세워졌다고 전한다.

당악 김씨는 고려 개국공신으로 당악군에 봉해진 김낙을 시조로 하며, 후손들이 그가 봉군된 당악을 본관으로 삼았다. 본관 당악(唐岳)은 평안남도 중화군과 강남군 일대에 해당하는 옛 고을 이름이다. 고구려 때 가화압(加火押)이라 부르던 것을 신라 경덕왕 때 당악현으로 고쳤고, 고려 초에는 당악촌으로 불리다가 1136년(인종 14) 중화현으로 바뀌었으며 1322년(충숙왕 9) 중화군으로 승격되었다. 이 지역은 1963년 평양직할시로 이관되었다가 2010년 황해북도에 편입되었다.

가문의 역사

조선시대에 문과 급제자 4명, 무과 급제자 13명, 생원시 3명, 진사시 7명을 배출하였다. 문과보다 무과 급제자가 세 배 이상 많은 점이 두드러진다. 집성촌은 평안북도 삭주군과 평안남도 평원군, 충청북도 제천시 등지에 형성되어 있으며, 본관지와 주요 세거지가 관서 지방에 있었던 까닭에 분단 이후 남한의 후손은 흩어져 자리 잡았다. 2015년 인구는 5,400명이다.

독립유공자 1명 확인

서훈자 명단 본관 확인 1

국가보훈부 독립유공자 명단 중 본관이 공개 자료(한국역대인명정보, 위키백과)에서 확인되고 생몰년이 일치하는 인물입니다. 본관 기록이 없는 서훈자가 훨씬 많으므로 실제 이 가문의 독립유공자는 이보다 많을 수 있습니다.

이름생몰년본적운동계열훈격본관 근거공적조서
김태연金泰淵1894–1968평안북도 삭주만주방면건국훈장 독립장(1968)역대인명정보공훈록 ↗

친일 행적 기록 0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공개 자료에서 본관이 확인된 친일 행적 기록이 수록되지 않았습니다.

가문의 주요 인물

고려

김낙

고려 개국공신으로 당악군에 봉해졌으며, 927년 팔공산 동수 전투에서 신숭겸과 함께 왕건을 구하고 전사하였다. 당악 김씨의 시조이다.

고려

김승

김낙의 아들로, 원윤에 특배되고 은청광록대부 상서좌복야에 올랐다.

고려

김자경

김낙의 손자로 문하평리를 지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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