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 정씨(丁)
羅州 丁氏
한글 표기가 같은 다른 가문이 있어요: 나주 정씨(鄭)
2명
확인 독립유공자
0명
수록 친일 기록
13.8만
2015 인구
78위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정윤종丁允宗
고려 중기 전라도 압해현(押海縣) 출신의 무신으로 검교대장군(檢校大將軍)을 지냈다.
시조 정윤종이 고려 중기 압해현 출신으로 검교대장군을 지내면서 후손들이 압해를 본관으로 삼았다. 압해는 오늘날 전라남도 신안군 압해읍 일대로, 백제의 아차산현이었다가 신라에서 압해군으로 개칭되었고 고려 초 나주의 속현이 되었다. 압해현이 폐현되자 영조 대부터 나주(羅州)를 본관으로 쓰기 시작하였으며, 鄭이 아닌 丁을 쓰는 성씨이다.
가문의 역사
시조 정윤종부터 정자급에 이르는 11세를 거치며 사족으로 자리 잡았고, 조선시대에 문과 급제자 49명을 배출하였다. 예조·병조판서를 지내고 보익공신 3등에 책록된 정옥형, 1534년 문과 장원으로 판중추부사에 오른 정응두, 두 차례 문과에 장원한 정윤희 등이 나왔다. 12세에서 교리공파(정수곤)·월헌공파(정수강)·기옹공파(정신)의 세 파로 갈리며, 조선 후기에는 실학을 집대성한 다산 정약용과 그 형제들이 배출되어 학술사와 한국 천주교사에 큰 자취를 남겼다. 금성·압해 표기를 합한 2015년 인구는 약 13만 8천 명이다.
독립유공자 2명 확인
정태진丁泰鎭
건국훈장 독립장조선어학회 전임위원으로 『큰사전』 편찬에 참여하다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체포되어 함흥형무소에서 복역하였다. 광복 후 조선어학회 재건과 국어학 교육에 힘썼으며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출처 확인 ↗친일 행적 기록 0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공개 자료에서 본관이 확인된 친일 행적 기록이 수록되지 않았습니다.
가문의 주요 인물
정옥형
예조판서·병조판서를 지내고 보익공신 3등에 책록된 문신이다.
정약전
정약용의 형으로 흑산도 유배 중 해양생물지 『자산어보』를 저술하였다.
정약용
호는 다산(茶山). 강진 유배 18년 동안 『목민심서』·『경세유표』 등을 저술해 조선 실학을 집대성하였다.
정하상
정약종의 아들로 조선 천주교회 재건에 힘쓰다 기해박해 때 순교하였으며 1984년 성인으로 시성되었다.
정광수
국가무형문화재 판소리(수궁가) 보유자로 광주국악원을 세워 후진을 양성한 명창이다.
정래혁
국방부 장관과 국회의장을 역임한 군인 출신 정치인이다.
참고 자료
같은 정씨의 다른 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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